피해 주민들 추위와 굶주림속 노숙

대지진이 휩쓸고 간 쓰촨(四川)성 피해 지역의 참상은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신화 통신과 반관영 통신인 중국신문사 기자들이 12일 밤에서 13일 새벽까지 현장에서 보내온 기사들은 폐허가 된 도시의 모습과 집을 잃고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지옥같은 밤을 지새운 주민들의 두려움에 떠는 표정을 전하고 있다.

2천년 농업용 대수로인 두장옌(都江堰) 부근의 두장옌시는 대지진으로 상당수의 주택가 학교들이 폭격을 당한 듯 부서져 폐허가 됐다.

도시 전체가 정전되고 통신이 중단되고 시민들은 넋이 나간 듯 한 마디로 만신창이였다.

두장옌에서 5㎞ 떨어진 수이징완(水井灣)대교 부근의 도로는 폭 100m의 산사태로 통행이 두절됐고, 고속도로상의 대교는 절단돼 굉음을 내며 절벽아래로 내려 앉았다고 목격자들이 전했다.

이 시에선 샹허 초등학교 건물이 붕괴돼 전교생 420명 가운데 320명이 사망했다.

학생들은 건물에서 떨어진 철재에 맞아 일대가 피바다를 이뤘다.

주위안중학교에서는 900명이 매몰돼 아직 생사를 완전히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사망자 5천명으로 최대 피해가 난 베이촨(北川)현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신화 통신 기자가 지프를 몰고 13일 새벽 4시께 베이촨현에서 10㎞떨어진 지점에 도착했을때 도로는 정체가 심했다.

산사태로 도로가 군데군데 막혔고 구호 물자를 실은 군용 트럭 수십대가 줄을 잇고 있었다.

읍내 입구에 들어서자 큰 바위들이 도로를 막고 있었다.

도로 옆 양변의 주택들은 대부분이 굴러 떨어진 바위에 의해 부서진 모습이었다.

식탁 크기에서 집채만한 크기의 바위들이 주택과 유치원 그리고 학교들을 내리 덮쳐 완전히 부숴버렸다.

건물의 80%가 파괴됐다.

사망자 중 상당수가 어린 학생들이어서 참담함은 더했다.

진주(錦竹)시는 13일 새벽 3시께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을 제외하곤 도시 전체가 칠흑같은 어둠 속에 빠져 있었다.

지진으로 도시 전체가 정전이 됐기 때문이다.

졸지에 이재민이 된 주민들은 샹허(祥河)광장에 모여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밤을 지샜다.

12일 점심이후 식사를 하지 못했고 한 병에 1-2위안 하던 생수는 병당 7위안까지 올랐다가 그마나 곧 동이 났다.

밤새 비까지 내려 고통과 두려움은 더욱 커지기만 했다.

랑중의 고성(古城)에 있는 명나라 시대 백탑은 지진으로 허리가 부러지며 두동강이 났다.

400년 된 쓰촨성 문화재인 12층짜리 백탑은 6층만 남았다.

(베이징연합뉴스) 조성대 특파원 sd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