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상황에서 원.달러 환율마저 18일 장중 한때 1,000원을 돌파해 소비자물가를 압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다음달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정책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했던 한국은행이 물가불안의 위험을 무릅쓰고 금리인하를 단행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8일 금융계와 외환시장 등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이날 장중 한때 1,003원선까지 급등, 한달만에 1,000원대 복귀할 조짐을 엿보였다.

1,000원 선에서 매물 벽에 막혀 다시 990원대로 밀렸으나 최근 가파른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특히 기획재정부가 경상수지 적자해소와 수출기업의 수익성 제고를 위해 원.달러 환율의 상승을 부추기는 양상이어서 금리인하를 모색하고 있는 한은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여기에 두바이유 현물가격은 17일 배럴당 106.39달러로 다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으며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114달러선 후반에 가격이 형성됐다.

지난달 금통위 직후 이성태 총재는 경제 성장세가 예상했던 것보다 상당폭 둔화되고 소비자물가는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상승세가 한풀 꺾이면서 중기 안정목표 범위내에서 진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기는 훨씬 나빠질 것으로 우려되지만 소비자물가는 추후 진정될 것으로 예상되니 금리인하를 단행할 여건이 마련됐음을 강하게 시사한 것이다.

그러나 금리인하를 위한 전제로 소비자물가가 예상했던 대로 안정세를 보여야 한다는 점을 한은은 분명히 하고 있다.

이 총재가 금리인하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한 이면에는 3월에 3.9%에 달했던 소비자물가상승률이 나 4월에는 상승세가 꺾여 3.8% 또는 그 아래 수준으로 내려갈 것이라는 기대감이 깔려 있다.

이러한 기대가 충족되기 위해서는 국제원유가격이 3월 수준에서 더 이상 급등하지 않고 원.달러 환율도 하향안정돼야 하지만 최근 흐름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환율이 900원대 중후반, 즉 970원선 안팎에서 안정될 경우 수입원자재 가격의 급등 효과를 어느 정도 흡수, 소비자물가에 미치는 충격을 완화할 수 있으나 1,000원을 훌쩍 넘길 경우 소비자물가 안정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한은의 생각이다.

이 총재는 2월 금통위 직후 "경기하방 리스크가 커졌다"면서 인플레이션 우려보다는 경기둔화에 더 주안점을 뒀지만 3월 금통위에서는 물가불안을 부쩍 강조했다가 4월에는 다시 경기에 확실한 초점을 맞췄다.

이처럼 이 총재의 입장이 달라진 배경은 내수경기가 좋지 않은 흐름을 보이는 가운데 2월 하순 국제유가가 사상 처음으로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고 3월들어 원.달러 환율이 1,000원대로 올라선 사실과 연관돼 있다.

경기둔화 조짐이 가시화되면서 금리인하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상황에서 돌연 환율이 급등하고 유가상승세가 더욱 가팔라지면서 금리인하 카드를 숨겨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5월 금통위에서 이 총재가 다시 인플레이션 우려를 앞세워 금리인하를 일단 유보하는 수순을 밟을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발표되는 모든 경기관련 지표들이 모두 부정적인 내용 일색이기 때문이다.

특히 3월 신규 고용실적은 18만4천개로 정부의 일자리 창출목표인 35만개의 절반 수준에 불과, 경기의 급랭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한은의 입장에서도 오로지 물가불안만을 명분으로 경기를 도외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고민의 강도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한은 주변에서는 현재의 국면이 물가와 경기라는 두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는 형편이며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두마리 토끼 가운데 한마리는 포기하고 나머지 한마리만 구해내야 하는 딱한 지경이라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이 경우 토끼 한마리를 구해낸 것에 대한 칭찬보다는 다른 한마리를 포기한 데 따른 비난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이 한은의 딜레마다.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sh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