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비례대표 국회의원 당선자들과 관련한 여러 잡음이 한꺼번에 불거지면서 비례대표 제도 자체를 개선하고 보완해야 한다는 여론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비례대표 의원 제도는 지역구 의원으로만 충족할 수 없는 각 직능 분야의 전문성을 보호한다는 목적 아래 국회 전체 의석수 299석 중 54석을 차지하고 있다.

정당 득표율에 비례해 각 정당에 의석수가 배분된다.

비례대표의 전신인 전국구가 처음 등장한 것은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63년 제6대 국회로, 5.16 공신들의 `논공행상'을 위해 도입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 그러나 전국구 제도는 후보들로부터 거액의 정치헌금을 받는 `공천장사' 등의 폐단으로 인해 `錢국구'로 불리면서 오랜 세월 폐지 논란에 시달려왔다.

비례대표제가 도입된 지 반세기가 다 돼 가지만 이번 총선에서도 비슷한 문제점이 반복되는 양상이다.

비례대표 후보의 특별당비에 `대가성' 논란이 불거지고 일부 비례대표 당선자는 공천 대가로 당의 실세들에게 거액을 건넸다는 설이 파다하다.

당선 직후 비리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기도 하고 `전과 4범'이 무난히 원내에 입성하기도 했다.

전문성이나 소수자 배려 원칙에 따라 당선됐다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후보들이 적지않은 점은 "비례대표 공천 원칙이 무엇이냐"는 의문 속에 `비밀대표', `비리대표'라는 신조어까지 낳고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제점이 제도 자체에 있다기 보다는 비정상적인 운영에서 기인한다고 판단, 비례대표제는 유지하되 운영의 투명성과 후보 검증 시스템을 강화하는 내용의 개선책을 주문하고 있다.

대통령제 하에서 내각제적 성격의 비례대표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은 원칙적으로는 맞지 않지만, 지역감정에 따른 지역 정당 구조가 뚜렷하고 선거 민주주의가 완전히 정착되지 않은 한국적 특성상 의회에 전문성을 보완하고 소수계층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 비례대표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
그러나 각 정당이 비례대표 공천을 밀실에서 진행하고 공천권을 쥔 특정 실세들이 공천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함에 따라 전문성, 다양성, 약자 배려 등의 기존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선거학회 이사인 명지대 김형준 교수는 "비례대표 공천이 나눠먹기식으로, 졸속으로 이뤄지다 보니 이미 16대 국회에서 문제가 됐던 사람까지 당선돼 다시 논란을 일으키는 코미디같은 일이 발생했다"면서 "이는 일부 인사들의 사적인 연고 등이 공천 과정에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비례대표 후보의 전문성과 공천 과정의 투명성이 확보돼야 한다"면서 ▲비례대표 후보를 환경, 문화 등의 전문영역별로 모집하고 ▲독일과 같이 비례대표 공천 과정을 녹취록 등으로 기록해 후보명단 제출시 중앙선관위에 함께 제출할 것 등을 제안했다.

숭실대 강원택 교수도 "이번 비례대표 공천 과정의 문제점은 후보 선정의 원칙과 기준이 불분명하고 선정 과정이 투명하지 않았다는 것과 함께 후보들의 자질과 역량, 도덕성 등을 검증할 시간이 사실상 없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개선책과 관련해 "비례대표 후보를 충분히 검증할 시간을 갖도록 하고 선정과정도 투명하게 공개해 뒷거래 의혹을 없애야 하며, 선정된 인물들은 내부 구성원의 승인을 얻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윤종빈 교수는 "당 지도부의 공천권이 너무 과도하고 밀실공천 때문에 후보를 검증할 방법이 없다"면서 ▲총선전 3개월 이전 비례대표 후보 명단 공개 ▲비례대표 후보 개인에 대한 선호표시 방법 강구 등의 방안을 제시했다.

한국정치학회장인 이정희 한국외대 교수는 "정당정치가 바로 잡히려면 비례대표 의석수가 많아져야 하는데, 여성을 절반 비율로 공천하는 여성 쿼터제나 여성 프리미엄 등은 비례대표의 본래 취지를 퇴색시킬 수 있다는 점이 있으므로 다른 문제점과 함께 전반적으로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권도 이 같은 문제의식에 공감하면서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어 향후 실질적 조치가 나올 지 주목된다.

박재승 전 통합민주당 공천심사위원장은 "나라를 경영할 소양을 갖췄는 지, 철학이 있는 지를 (비례대표 공천의) 제1 가치로 보지않고, 선출권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당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다른 생각을 가졌다면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K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비례대표 공천에서) 지도부와 친소관계가 작용하는 게 아니냐는 등의 비판이 있다"면서 "그럴 경우 본래 취지에 어긋나기 때문에 소선거구제에서 국민 검증을 받아서 들어오는 경우와 (비교해) 어떤 게 장점이 많은 지는 재검토하고 제도 개선할 여지는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앞으로 국회의원 선거가 4년 남았기 때문에 (비례대표제 개선을) 장기과제로 볼 여지가 있다"며 당장 이 문제를 다루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민주당 최재성 원내 대변인은 "비례대표 공천을 비롯한 운영은 법률과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양심과 정치적 문제"라면서 "선관위에 명단을 제출하기 전에 당내에서 일정한 평가 틀을 갖춰서 평가해보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이광빈 기자 lesli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