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가 대기업의 지분 이동 과정을 보기 위해 주주명부 열람을 신청한 것은 부당하다는 법원의 결정이 나왔다.

이는 그간 10주 안팎의 주식을 가진 시민단체들이 대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한다는 취지로 주주명부 열람을 신청해 과거의 지분 이동 과정까지 보는 것은 주주권리를 남용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수석부장판사 이동명)는 14일 삼성생명 주식 10주를 가진 경제개혁연대 직원 신모씨가 삼성생명을 상대로 제기한 주주명부 열람 및 등사(복사)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신씨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과 삼성에버랜드가 삼성생명 지분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임직원 명의의 차명으로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실명으로 전환했다는 의혹이 있다"며 "1998~2001년 및 2007년 정기주총 개최용 주주명부를 열람하게 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냈다.

재판부는 "주주에게 기업의 주주명부를 열람하게 하고 등사 신청을 허용하는 본래 목적은 주총을 앞두고 주주들이 의결권 대결 등을 할 때 위임장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면서 "신씨는 주주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이런 취지 외에 다른 목적으로 주주명부 열람을 신청한 것이어서 부당하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또 "회사는 주총이 끝난 뒤 남은 과거의 주주명부를 장기간 보존하거나 비치할 의무가 없다"면서 "신씨가 1998년부터 2001년까지 4년치의 주주명부를 요구한 것은 주주명부 열람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설명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그동안 우리나라에는 시민단체의 주주명부 열람,등사 신청에 대한 법원 판단은 없었다"며 "회사의 이익을 주된 목적으로 내세우지 않고 재벌 개혁이나 지배구조 개선 등을 주목적으로 하는 주주명부 열람 신청은 목적 자체가 부당하다"고 밝혔다.

그는 "시민단체들이 기업의 구조 개선을 촉구하기 위해 운동을 하는 것은 좋으나 주주명부 열람 권리를 남용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신씨는 삼성생명 주식의 차명 보유 등과 관련,과거의 주주명부와 현재의 주주명부를 비교하는 작업을 통해 불법적인 지분 이동을 파악하고 지배구조를 개선한다는 취지로 주주명부를 열람하게 해 달라는 신청을 냈다.

한편 일각에서는 대기업들의 불법 행위를 감독하는 시민단체의 소액주주 운동이 위축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하고 있다.

주주명부 열람은 소액주주들이 할 수 있는 대표적인 주주권리 행사라고 소액주주 운동가들은 주장해 왔다.

박민제 기자 pmj5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