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의 유족재단인 SOGEX가 한국 측 에이전트인 GLI컨설팅을 통해 소설 '어린 왕자'의 제호와 그림에 대해 상표권을 침해했다며 책 판매 중단을 요구해 국내 출판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14일 교보문고 등 대형서점들은 "'어린 왕자'의 저작권을 소유한 생텍쥐페리 유족재단 SOGEX의 한국 측 에이전트인 GLI컨설팅이 법률대행을 맡은 인피니스를 통해 '어린 왕자'의 제호 2종과 삽화 2종을 담은 책은 상표권 도용의 소지가 있다고 지난달 통보해와 일단 해당 책들을 진열대에서 빼고 있다"고 밝혔다.

문제가 된 상표권은 '어린 왕자'라는 한글 제호와 'Le Petit Prince'라고 필기체 프랑스어로 병기한 제호,어린 왕자가 혹성에 서서 별을 바라보고 있는 삽화,어린왕자가 초록색 망토를 입고 정면을 보는 삽화 등 4종이다.

이번 일은 지난해 10월 국내에서 이 상표권들을 최장 2016년까지 독점 사용하기로 SOGEX사와 계약한 디자인문구 업체 '아르데코 7321'의 문제 제기에 따른 것.아르데코 7321은 이 삽화들을 이용해 수첩과 다이어리 등 각종 문구를 제작ㆍ판매 중이다.

교보문고 측은 "'어린 왕자'에 사용된 모든 삽화가 대상이 아니고 삽화 2컷과 제목서체 등 4종을 사용한 책들만 문제가 되기 때문에 이를 선별하는 작업이 만만치 않다"고 밝혔다.

'어린 왕자'는 생텍쥐페리(1900~1944년)가 1943년 펴낸 동화형식의 소설.국내에서는 1972년 문예출판사를 시작으로 약 400여개사가 번역 출간했으며 현재 어학교재를 포함해 190여종이 유통되고 있다.

출판계는 이번 사태에 대해 "작가 사후 50년이 지나 저작권이 소멸된 책의 삽화를 별도로 분리해 상표권 등록을 해준 것은 저작권법 취지에 배치되는 처사"라며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국내 최초로 '어린 왕자'를 출판했던 문예출판사의 전병석 사장(71)은 "내용증명서를 받고 서면 답변서를 통해 상표가 아니라 저작물이기 때문에 기존 저작권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이미 전달했다"면서 "앞으로 출판사들과 논의해 특허청에서 상표등록을 해준 것에 대해 무효 소송을 준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저작권법 전문가인 김기태 세명대 교수는 '상표권 남용'을 지적하면서 "책에 쓰인 해당 그림과 글자는 상표가 아니라 콘텐츠의 일부로 쓰인 저작물"이라고 말했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