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외환위기는 우리 국민들에게 큰 시련을 안겼지만 재테크 차원에서 냉정하게 돌이켜보면 또 다시 찾아오기 어려운 기회이기도 했다.

지금은 10억원대를 훌쩍 넘어서는 강남의 30평형대 아파트가 2000년을 전후로 한 시기에는 3억원을 넘지 않았으니 누구라도 '내가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면,부동산 투자에 적극 나설 텐데…'라는 공상을 한번쯤 해봤었음직하다.

물론 한국에 다시 외환위기와 같은 경제위기가 찾아오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게 상당수 경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국가 부도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경험한 학습 효과가 있어 한국도 금융권의 리스크 관리 능력은 상당 수준에 올라와 있다.

이 때문에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인생역전의 기회 역시 찾아오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해외로 눈을 돌려본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와 매우 유사한 위기를 겪고 있는 미국에 대한 강남 아줌마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게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요즘 강남권을 중심으로 프라이빗 뱅킹(PB) 센터에는 큰 폭으로 가격이 하락한 미국 부동산에 대한 투자를 저울질하는 고객들이 늘어나고 있다.

또 실제로 투자를 실행에 옮긴 '큰손'들도 눈에 띈다.

강남 아줌마들은 뉴욕 로스앤젤레스(LA) 등의 대도시 가운데 입지 여건이 뛰어난 곳에서 싸게 나오는 급매물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뉴욕 맨해튼 지역이 대표적인 사례다.

남편이 중소기업 사장인 이모씨(54)의 경우 최근 미국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있는 사무실을 7억원에 계약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연 7~10% 정도로 예상되는 임대수익을 노린 것인데,맨해튼 지역 상업용 부동산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도 불구하고 매물이 적은 상황이어서 매물을 찾는 데 시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씨가 구입한 상가의 경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본격화하기 이전인 작년 상반기까지만 하더라도 10억원까지 갔으나 금융위기로 가격이 많이 빠졌다고 한다.

뉴욕 근교에 30평형대 이상 콘도를 사려는 수요도 늘어나고 있다.

맨해튼 지역에는 자국인들에 의한 부동산 수요가 급감한 가운데 한국의 강남 아줌마들의 '입질'이 증가함에 따라 현지 부동산 중개업계를 중심으로 한국인들만을 대상으로 한 부동산 투어 행사도 마련되고 있다.

강남 부자들이 이처럼 미국 부동산 투자에 관심을 보이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상업용 부동산이 아닌 주택을 알아보고 있는 부자들의 경우 투자용이라기보다는 세컨드 하우스 개념으로 집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캘리포니아나 마이애미 등 주변 경치가 좋은 곳에 수영장이 딸린 단독주택을 마련해 놓고 여름휴가 기간 등을 이용해 휴식을 갖겠다는 것이다.

이들 중 일부는 은퇴 이후에 아예 이곳으로 이주해 노년을 미국에서 즐긴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올해 초 LA 근교 한 휴양지 해변가에 방 9개짜리 고급 주택을 수십억원대에 매입한 김모씨(42).김씨는 1년 미국 연수기간에 살기 위해 이 주택을 샀는데 연수가 끝나 한국에 돌아가더라도 계속 보유할 계획이다.

김씨는 "이곳 경치가 워낙 좋아 한국에 돌아가더라도 이 집을 계속 보유하면서 1년에 한 차례 이상씩 가족들과 이곳을 찾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강남 부자들의 미국 부동산 시장행 러시에는 무엇보다 1997년 외환위기 학습 효과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자영업을 하면서 300억원대의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한 고객을 최근 지점에서 만나 이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최 지점장.미국이라는 나라가 부도를 낼 나라도 아니고 금융업계를 제외한 제조업체들의 경우 실적도 괜찮은 편이야.우리나라야 국제통화기금(IMF)의 고금리 정책으로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가속화하고 실업자들도 넘쳐났지만,미국이 그 정도까지 가지는 않을 거란 말이야.그럼 입지 여건이 뛰어난 지역을 중심으로 부동산 값이 언젠가는 다시 오르지 않겠어.한 10년 앞을 내다보고 노후 대비라든가,자식들에게 증여할 목적으로라도 미국에 집 한 채 마련해둘 만한 것 같아."

물론 지금 현재 미국의 금융위기가 아시아 금융위기 시절과 매우 닮아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때문에 지금이 미국 부동산 시장에 투자할 적기라는 일부 강남 부자들의 주장에도 설득력은 있다.

하지만 부자들도 마찬가지이고,특히 '개미'투자들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 점은 한국에서 부동산 투기하는 것처럼 미국 부동산 투자에 나서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철저하게 실수요 개념으로 최소한 10년 이상 보유할 생각으로 투자에 나서야지 '한탕'을 노려 본인의 능력을 뛰어넘는 투자에 나서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최철민 미래에셋증권 서초로지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