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회귀 직접규제.생색내기 논란

정부가 20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경제상황 및 서민생활 안정을 위한 점검회의를 열어 물가 대책을 집중 논의했으나 공공요금 동결, 할당관세 조정 등 기존에 발표됐던 내용 외에는 그다지 새로운 것이 없어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대통령이 물가를 직접 챙기고 대책을 독려하는 등 강도 높은 물가 고삐잡기에 나서 관련 부처들이 발빠르게 움직이고는 있으나 발품을 판 만큼의 효과는 미지수다.

현재의 경제 악화나 물가 불안은 국제유가 및 원자재가 폭등, 국제 금융시장 불안 등 기본적으로 외부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대책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수입물가의 폭등과 외환시장 불안 등이 국내 물가에 직격탄으로 작용하고 이는 내수부진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정부는 "대책을 마련키로 했다", "지원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등 다소 막연한 입장만 되풀이 하고 있다.

◇ 물가대책 '재탕' '삼탕'

정부가 이날 내놓은 물가안정 방안은 기존에 밝힌 대책에서 별로 진전된 것을 찾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공공요금 동결과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재정지원 방안, 50개 품목에 대한 가격 관리 등은 올해 초부터 수 차례에 걸쳐 열린 정부 합동 물가안정대책회의에서 이미 밝힌 내용들이다.

이 같은 직접규제 방식으로는 물가를 잡기가 힘들다는 분석도 이미 나와있다.

공공요금의 경우 정부에서 통제가 가능한 물가로 여겨지지만 전체 물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6%에 불과하고, 일시적인 요금동결은 추후 공공요금의 대폭 인상으로 이어져 결국 중장기적으로는 국민에게 부담이 돌아갈 것이라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50여개 품목에 대한 가격 관리라는 직접적인 시장규제 정책에 대해서도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 60, 70년대 박정희 정부 시절 생필품에 대한 직접적 가격규제는 물자공급 감소로 이어지는 등 부작용을 양산하면서 물가안정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특히 오늘날에는 공산품의 경우 가격이 완전 자유화돼 지난 70년대와 비교하면 직접적인 가격규제는 거의 나오기 힘들다는 점도 정부 대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벌써부터 제조업계에서는 자사 제조 품목이 이 지수에 포함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애를 쓴다는 소식도 들린다.

특정제품의 가격을 집중 관리하면 당장 해당 제품을 많이 쓰는 서민들은 일시적으로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 70여품목 무세화도 효과 미미

정부는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의 충격을 최대한 흡수하기 위해 할당관세를 충분히 활용한다는 전략이다.

곡물과 원자재, 석유제품 등 총 82개 품목에 대한 할당관세를 조기 인하하거나 아예 관세율을 0%로 낮출 방침이다.

82개 가운데 90% 이상인 70여개 품목의 무세화(無稅化)가 추진될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현재 기본 관세보다 낮은 할당관세를 적용받는 품목이 원유.폴리에틸렌.LNG.LPG.밀(제분용).옥수수(가공용) 등 47개인 점을 감안하면 대상이 크게 늘어나는 셈이다.

더욱이 시행 시기도 일반적인 하반기 조정 시점까지 기다리지 않고 최대한 앞당길 계획이다.

그러나 원자재 할당관세 적용 확대와 조기 인하는 지난 5일 '물가 및 서민생활 안정 실천 계획'을 비롯해 지금까지 계속 거론된 내용인데다 실제 어느 정도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지는 구체적 품목과 인하 폭이 확정되야 가늠할 수 있다.

정부는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과 추진방침을 21일 밝힐 예정이다.

주요 품목의 할당 관세는 추가 인하 여력이 크지 않다.

예를 들어 곡물의 경우 이미 대두(0%), 동식물성 유지(0%), 제분용 밀(0.5%), 가공용 옥수수(0.5%), 면실박(1%) 등 주요 곡물에 0%에 가까운 할당관세가 적용되고 있어 추가 인하로 모두 0%의 세율이 적용된다해도 몇 년새 두 배 가까이 폭등한 가격 부담을 덜기는 어렵다.

원유(1%), LNG(1.5%), LPG(1.5%) 등 석유제품에도 저율의 할당관세가 적용되고 있어 이들 제품에 대한 관세율을 추가적으로 0.5∼1%포인트 가량 인하해 무세화하더라도 실제 소비자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미미할 수 밖에 없다.

◇ 뾰족한 대책 없어 고민

정부가 물가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것은 이번 경제위기가 기본적으로 외생변수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국제시장에서 원유, 원자재, 곡물가격이 급등하고 있어 물가를 정책적으로 방어하기엔 한계가 있다.

70년대에나 볼법한 철근사재기 단속 대책을 내놓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레미콘업체들이 납품 중단을 선언하면서 이미 건설현장에서 차질이 빚어져 앞으로 공사지연이나 공급물량 부족, 이에 따른 부동산값 불안 등 여파가 우려되고있다.

사교육비 부담 완화를 목표로 내놓은 학원비 단속도 제대로 해보기도 전에 영어교육 열풍이 불어 사교육비 부담은 더 심화된 것으로 평가된다.

이 때문에 정부가 물가 불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적절한 상황 인식이지만 이를 해결하는 방식은 구태의연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민간연구소 관계자는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정부가 각종 회의를 하면서 분주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워낙 외생변수들이어서 해법을 내기가 쉽지 않다는 게 문제"라며 "서민들을 배려하는 실질적인 대책을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서울연합뉴스) 주종국 신호경 박대한 기자 satw@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