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은 독특하다.단상에 별도 좌석이 마련되지 않는데다 그 흔한 치사나 축사도 없다.

무대 행사래야 개막 선언 및 개막작 관계자와 심사위원 소개가 전부다.

참석자들은 영화제와 별 상관 없는 '높은 분'들의 장황한 연설을 듣느라 몸을 뒤챌 일 없이 축제만 즐기면 된다.

부산영화제 여파로 줄어들긴 했지만 단상은 오랫동안 권위주의의 표상이었다.

단상 위에 앉거나 올라가는가 그렇지 못한가로 힘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주역과 들러리로 나뉜다.

졸업식만 해도 교장선생님에 장학사,학부형 대표,구의회 의원까지 단상에 자리하고 몇몇 수상자만 오르내린다.

또 단상에 좌정한 분들은 죄다 한 말씀씩 해야 하니 졸업생들은 지겹기 일쑤다.지방자치단체를 비롯한 관공서 행사도 마찬가지다.자치단체장에 국회의원,시(또는 구)의회 의장까지 두루 단상에 앉아 객석을 굽어본다.

지자체마다 떡 벌어지게 지어놓은 문화회관 중엔 객석은 평평한데 단상은 2m 이상 높게 만들어놓은 곳이 적지 않다.

세상은 그러나 바뀌었다.제17대 대통령 취임식 모습만 해도 그렇다.단상의 높이가 일반 객석과 큰 차이 없이 낮아진 건 물론 단상에 초대된 사람의 구성도 크게 달라졌다.

장관 내정자와 청와대 수석 내정자들 대신 외국인 투자자와 강소(强小) 기업인,서해교전 희생자 등이 자리잡았다.

신임 이명박 대통령 또한 식장을 걸어서 들어오고 나갔다.국민을 섬기고 경제를 살리겠다는 대통령의 국정 철학이 취임식이라는 새 정권 출범의 첫 형식에 반영된 셈이다.

낮은 단상은 탈(脫) 권위주의는 물론 화합의 상징이다.형식은 중요하다.그 자체로 내용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선진화란 단지 잘 먹고 잘 사는 게 아니다.박물관마다 어린이학습실을 마련하는 것,횡단보도의 위치를 바꾸면 보도와 차도 사이 턱도 옮길 줄 아는 것,선입견으로 누군가의 기회를 박탈하지 않는 등 의식변화야말로 선진화의 첫걸음이다.

단상 낮추기로 시작된 새 정부의 선진화가 5년 내내 착실히 진전되기를 기원한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