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주 < 서강대 명예교수 >

오늘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제17대 대통령이 취임한다.무엇이 이명박(MB) 새 대통령 탄생을 가능케 했는가. '고소영'의 결집력이 아무리 강해도 그들만의 숫자로는 불가능하다.

최고 공훈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돌아간다.그의 임기 중 최대 실정인 경제 죽이기를 꼬집어 내세운 '경제 살리기'슬로건이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선거운동 과정에서 온갖 악성 루머로부터 줄곧 지켜준 갑옷이자,각계각층 지지층을 끌어모아 부풀려준 강력 자석은 역시 기업인으로서 MB의 폭발적인 인기였다.

오늘 축하식전에서 MB는 감동적인 미사여구가 담긴 취임사를 낭독할 것이다.연설내용은 미리 알 수 없지만 왜 이 시대,이 시점에서 다른 사람이 아닌 MB 자신이 최고 지도자로 등장하게 되었나를 분명히 인식해야 대통령으로서 소임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의 최고 권력이 대통령에게 부여된 참뜻은 단순히 국토와 국민 위에 힘을 행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토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고 이익을 증진하는 데 있다.과거 정권들은 납북어민 문제 외면,서해 교전 희생자 푸대접,탈북유랑민 방치는 물론 나라를 위해 싸운 국군 포로의 생사 확인과 귀환 문제에 무성의로 일관했다.국가가 지켜줘야 할 것으로 국민의 생명과 아울러 재산이 있다.상품을 소유하고 처분할 권리를 사고 파는 곳이 시장이고 보면 재산권의 존중 없는 곳에서 시장은 시든다.좌파정권 하에 저잣거리는 판치고 돌아다니는 깡패 등쌀에 위축된다.정부 공공기구들이 탈 쓴 조폭이기도 하기 때문이다.법과 질서 지키기는 정부가 스스로 깡패 탈을 벗고 시장 도우미로 환골탈태하는 데서 비롯된다.

MB정부의 축복은 노무현 정부의 실패요인이 뚜렷해 선회할 방향이 자명하다는 것이다.새 정부가 지향하는 시장경제 중시,경제성장 촉진,성장을 통한 분배개선,정부 군살 빼기,시장 개방과 글로벌 스탠더드 맞추기 등이 바로 그런 것이다.이상의 목표설정에 다수 국민이 동감했기에 오늘의 MB가 있고 앞으로 크고 작은 난관에 봉착해도 새 정부를 밀어줄 것이다.아라비아 사막 모랫바람을 무릅쓰고 다져진 도전적 기업가 정신,청계천 부활에서 보여준 탁월한 해결사 기질이 과거의 미시적 MB신화라면,그것이 씨줄 날줄이 돼 국정운용이라는 거시적 태피스트리(융단)를 짜는 일에 성공 밑천이 될 것이다.

새 정부의 불행 리스트는 축복의 그것보다 길다.산이 높으면 골이 깊듯이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국민은 근시안이고 기억상실증이다.한국인은 유난히 조급하고,공약달성을 재촉한다.선거당일에 비해 요즘 지지도가 좀 낮아진 것은 인수위원회의 경거망동이 빌미가 되기도 했지만 무서운 인심의 변화임을 알아야 한다.할 일은 많고 임기는 짧다.

두 번째 불행은 국민정서에 박힌 화살의 맹독성이다.한때 웃음거리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못질'발언이 사실상 빈말이 아니었다.국민은 거개가 비이성적이고 쏠림현상을 보인다.지식과 정보,그리고 논리의 무장이 없어 해독기능이 취약한 국민의 정서는 정치인 대못질과 인기영합 화살질에 벌거숭이다.당초 정부조직 개편안의 퇴색은 물론 향후 예상되는 조세경감조치 등의 어려움도 그 탓이다.봉하 마을에서 기대되는 평온도 그 덕분이다.

세 번째 불행은 전례가 드문 복합적 경제난국이다.경제침체,인플레이션,금융시장 불안이 위협적이다.환란(換亂) 후 난국타개가 용이했던 것은 세계경제를 이끄는 미국 경제의 활기찬 엔진에 연계돼 있었던 덕분이었으나,현재 그 엔진은 덜커덩 굉음을 울리고 있고 중국 엔진은 아직 대체역할을 하기에 출력이 태부족이다.세계가 한때 고성장 저물가의 황금시대를 누릴 수 있게 했던 중국,인도 등 신흥경제가 원유,원자재,곡물 등 주요상품가격 오름세 쓰나미를 만드는 진원지로 돌변하고 있다.세계적 스태그플레이션 악령이 어른거린다.

금융시장에 천둥번개치고 먹구름이 짙어 구름 뒤 햇살을 믿고 마냥 기다리고 있기 조마조마하다.미국 비우량저당채권 시장 붕괴의 파장이 우량채권으로,해외로 번져 세계유수의 거대 금융회사들이 궁지에 몰리고 신흥경제의 국부펀드들이 응급 수혈해주는 진귀한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하늘 같았던 앵글로 색슨 류의 글로벌 스탠더드가 퇴위 위기에 몰리고 있고,선진경제권의 보호주의 색채가 두드러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내수와 수출을 촉진해 성장하고 일자리를 늘려야 하고,물가를 안정시키고 노동시장을 유연화시키고,혁신기술을 개발하고 외국직접투자를 유치해야 한다.해외경제가 어려울 때를 틈타 '토종' 운운하는 국수주의가 혹세무민함을 경계해야 한다.한국경제의 활로는 세계경제와의 연결고리를 다각화하고 튼튼히 함에 있다.

네 번째 불행은 부나비들이 많다는 것이다.이것은 모든 정권의 공통사항이므로 딱히 MB의 고민이랄 것도 없다.진정 위대한 지도자는 눈과 귀는 열고 입은 무겁게 하며,주변에 어려운 사람 두기를 마다 하지 아니한다.

MB의 성공을 위해 한두 가지 제언을 한다.억압정치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손꼽히는 이유는 문제가 발생하면 즉각 대책을 세우고 일관되게 추진했다는 기억 때문이다.원유가 인상되면 조명등 끄기 등 국민 분위기를 문제해결 쪽으로 몰고 갔다.민둥산이 문제면 나무를 심었고 간첩 침투에도 맞대응책을 세웠다.국제수지를 위해 수출확대회의를 월례행사로 삼았다.

기업인 출신인 만큼 MB는 목표관리경영(MBO)에 도통할 것이다.중앙집권적 계획경제처럼 지나간 시대의 낡은 유물을 재활용하라는 말이 아니다.직업관료의 규제틀을 깨고 민간부문의 창의력에 활개를 달아주는 초기의 혁신작업 열기가 얼마 후 유야무야 되지 않도록 제도화하라는 말이다.정부조직 축소,공기업 민영화는 계속사업이어야 한다.조직과 인원이 줄면 규제가 따라 준다.

그런데 모든 규제 혁파가 다 능사가 아니다.잘못 없애면 시장혼란이 오는 규제,금융으로 말하자면 건전성규제가 바로 전형적 예다.이를 변별해 내는 전문적 안목이 존중돼야 한다.금융 파국은 쉽사리 실물경제를 함몰시킨다.음양의 조화는 국정운용에도 불변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