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영과 곽태휘의 통쾌한 득점포가 폭발한 허정무호(號)가 적지에서 보란듯이 '만리장성'을 무너뜨렸다.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17일 중국 충칭 올림픽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08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개막전에서 개최국 중국을 맞아 박주영이 전반 선제골과 후반 동점골, 곽태휘가 후반 인저리타임 극적인 결승골을 터트린 데 힘입어 후반 초반 파상 공세로 두 골을 뽑아낸 중국을 3-2로 제압했다.

한국은 1978년 방콕아시안게임 1-0 승리 이후 중국에 한 번도 지지 않는 불패신화를 이어갔다.

중국 축구는 30년간 계속된 공한증(恐韓症)에 몸서리쳐야 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41위 한국은 중국(FIFA 랭킹 75위)과 역대 전적에서 16승11무로 절대 우위를 지켰다.


한국은 2003년 첫 대회 우승 이후 5년 만에 동아시아 정상 탈환을 향해 힘찬 출발을 알렸다.

패배에 몰릴 위기도 있었지만 중국만 만나면 살아나는 한국 축구의 저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한 판이었다.

허정무 감독은 지난 6일 월드컵 예선 투르크메니스탄전과 달리 스리백(3-back)을 기본전형으로 짰다.

공격진 중앙에 박주영을 놓고 좌우에 염기훈, 이근호를 꽂은 뒤 중원엔 김남일, 조원희를 포진시켰다.

미드필더진 좌우엔 박원재, 이종민이 나섰고 스리백 수비라인엔 곽희주, 조용형, 곽태휘가 섰다.

수문장은 정성룡.
공한증을 털어내고 중국 축구의 새 역사를 쓰겠다고 장담한 세르비아 출신 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 중국 감독은 주팅과 취보를 투톱에 놓고 왕둥에게 공격을 조율하도록 했다.

5만8천여명의 광적인 '치우미(球迷)'가 응원전을 펼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2만여 관중만 들어찬 충칭 그라운드는 비가 내려 미끄러웠다.

태극호는 조심스럽게 탐색전을 폈다.

시작하자마자 중국 수비수 순시앙이 경고를 받고 이종민이 3번이나 같은 지점에서 프리킥을 찼지만 볼 꼬리가 길어 소득이 없었다.

5분과 18분 이근호의 논스톱 슈팅과 원바운드 헤딩슛은 빗맞았다.

24분 박주영이 중앙에서 내준 볼을 박원재가 터닝슛으로 연결했지만 힘이 없었다.

제대로 된 슈팅은 전반 30분에야 나왔다.

2선의 김남일이 물에 젖은 그라운드를 감안하고 때린 왼발 땅볼 슛이 골 포스트를 살짝 빗겨나갔다.

위기도 있었다.

전반 36분 왼쪽 측면이 완전히 허물어져 아찔한 문전 돌파를 허용했지만 조용형이 한 발 앞서 걷어냈고 3분 뒤 리웨이펑의 헤딩슛도 골대를 스치듯 빗나갔다.

기다리던 골은 박주영의 머리에서 터졌다.

전반 42분 왼쪽 골라인까지 파고든 염기훈이 수비수 장슈아이를 앞에 놓고 감각적인 찍어차기로 왼발 크로스를 올리자 골지역 오른쪽에 도사리고 있던 박주영이 반 템포 빠른 점프로 수비수 순시앙을 따돌렸다.

순시앙의 등 뒤에서 점프한 박주영은 날아오는 볼 궤적에 정확한 타이밍을 맞춰 헤딩슛을 꽂았고 골키퍼 중레이가 손 쓸 틈도 없이 골문 오른쪽 상단을 흔들었다.

작년 7월 아시안컵 사우디아라비아전 최성국의 골 이후 7개월 만에 국내파 공격수가 터트린 A매치 골이었다.

그러나 홈 그라운드에서 중국의 반격도 거셌다.

후반 시작하자마자 공세를 편 중국은 주팅의 헤딩슛을 정성룡이 선방으로 쳐내자 공세 수위를 더 높였다.

후반 2분 코너킥에서 수비진이 볼을 쳐내자 중원에서 달려들던 저우하이빈이 강력한 오른발 캐넌슛을 꽂았다.

정성룡이 몸을 날렸지만 꼼짝할 수 없었다.

계속 흔들린 허정무호는 역전골까지 내줬다.

후반 16분 왕둥의 프리킥이 날아오자 류젠이 헤딩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허정무 감독은 19세 신예 구자철을 투입하면서 변화를 줬다.

또 박주영이 위기를 돌파하는 해결사 역할을 해냈다.

후반 20분 페널티지역 우중간 외곽에서 프리킥 찬스를 잡은 박주영은 오른발로 볼을 매끄럽게 감아찼다.

정확히 발 안쪽 엄지발가락 부근에 감긴 볼은 예리한 포물선을 그리며 크로스바 밑둥을 때리고 그물을 휘감았다.

2-2가 되자 허 감독은 장신 고기구를 투입했다.

막바지 공세를 편 한국은 후반 42분 곽태휘의 헤딩슛이 파울로 노골 선언되면서 무승부에 만족하는 듯 했다.

마지막 순간 중국 격파의 선봉장은 허정무호 1호골의 주인공 곽태휘가 맡았다.

공세에 가담한 곽태휘는 후반 인저리타임 2선에서 뛰어들다 과감한 오른발 중거리포를 쏘았고 순간적으로 구멍이 난 중국 골문 오른쪽을 시원하게 꿰뚫었다.

공한증 탈출을 외쳤던 중국 치우미들은 30년 징크스에 고개를 떨어트릴 수밖에 없었다.

(충칭<중국>연합뉴스) 배진남 기자 hosu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