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등 선진국 금융시장 불안과 글로벌 인플레이션 우려 등 대외 변수들이 점차 실물 경기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정부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1일 각각 발표한 경제동향에서 한 목소리로 국내 소비 위축을 걱정했다.

최근 생산 수출 설비투자 등이 견조한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으나 내수의 한 축인 소비에서 균열이 생기기 시작해 향후 경기 전망이 낙관적이지만은 않다는 진단이다.

◆소비 위축 조짐

KDI가 이날 발표한 '2008년 2월 경제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소비재판매액은 10월 이후 2개월 연속 증가세가 둔화됐다.

이는 가계 소득 흐름이 나빠져서가 아니라 국제금융시장 불안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한 심리적 불안 때문이라고 KDI는 풀이했다.

지난 연말 국내 증시의 하락세가 금융 자산을 보유한 중산층 이상 계층에서 '역(逆)자산효과'를 낸 것도 영향을 줬다.

높은 물가 상승세는 이처럼 나빠진 소비심리에 더욱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1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전월(3.6%)보다 높은 3.9%를 기록해 2004년 9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KDI는 "1월의 높은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고유가 및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것이어서 향후 상승세가 더욱 확대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면서도 "근원물가지수(농산물ㆍ석유류 제외지수) 상승률이 전월(2.4%)에 비해 크게 확대된 2.8%를 기록,수요 측면에서 물가 상승압력이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재정경제부도 이날 내놓은 '최근경제동향(그린북)'에서 "2월 소비자물가도 연초 서비스요금 조정,국제 원유ㆍ곡물가격 상승 등으로 3%대 중후반의 증가율을 보일 전망"이라고 예상했다.

◆수출에도 타격 우려

1월 중 수출은 자동차 기계 통신기기 등의 호조세에 힘입어 전년동월대비 17% 증가했다.

하지만 원유 수입액이 급증하면서 수입은 이보다 큰 폭(35.1%)으로 증가,무역수지(통관기준)는 적자(34억달러)를 면치 못했다.

더 큰 문제는 미국 서유럽 중국 등 한국의 주요 수출대상국 경기 전망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점이다.

재경부는 그린북에서 "2007년 4분기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전기비연율)이 3분기(2.0%)보다 크게 둔화된 0.6% 증가에 그쳐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유가 등 원자재 가격 상승이 수입증가 및 물가상승 압력으로 작용해 미국경제에 추가 부담요인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조동철 KDI 거시경제연구부장은 "수출이나 생산ㆍ재고 순환 등 거시경제 지표와 한국 기업의 수익성 및 현금유동성 등이 모두 정상적이어서 국내 경기가 내부의 급격한 위축 요인으로 무너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하지만 선진국 경제 불안 등 외부 위험 요인이 단기적으로 소비에 타격을 주고 중ㆍ장기적으로는 수출에까지 지장을 준다면 올해 경제를 낙관적으로 볼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소비자기대지수 주목

이에 따라 12일 통계청이 발표할 예정인 '1월 소비자기대지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근 소비 위축에 심리적 요인이 큰 만큼 민간 소비 주체들이 향후 경기를 어떻게 보고 있느냐가 소비를 통해 실물 경기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기대지수는 지난해 4월 이후 9개월 연속으로 기준치(100)를 넘었다.

한편 13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금리 목표치를 어떻게 결정할지도 향후 경기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이다.

소비자 물가가 한은의 관리범위(2.5~3.5%)를 벗어난 만큼 금리를 올려 물가를 잡는 것이 정상이지만 경기 하강 우려로 금리 인하 필요성까지 동시에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