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법원 민사합의21부는 31일 삼성자동차 채권 환수 소송에서 삼성 계열사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조3200억여원을 채권단 측에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삼성자동차 채권 환수 소송 1심에서 재판부가 사실상 채권단의 손을 들어줌에 따라 삼성이 '딜레마'에 빠지게 됐다.채권단이 보유한 삼성생명 주식 233만주를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의 문제에 직면한 것.문제는 채권단의 삼성생명 보유주식을 처분하기가 생각보다 어렵고 그룹 지배구조 변화와 직결된다는 데 있다.

현재 채권단의 삼성생명 보유주식 처분과 관련한 시나리오는 크게 두 가지.먼저 삼성생명을 상장시키기 이전에 국내외 원매자를 찾아 매각하는 방법이다.

현재 비상장사인 삼성생명의 장외시장 거래가는 74만∼75만원에 달한다.채권단이 보유한 233만주를 모두 매각할 경우 1조7242억∼1조7475억원을 받을 수 있다.

법원이 채권단에 지급하라고 한 1조6338억원을 넘는 금액이다.

그러나 비상장상태에서 매각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는 게 문제다.국내에서 이만한 자금을 조달할 투자자가 드물고,투자자 입장에서 비상장사인 삼성생명 지분을 사들일 '메리트'도 없다는 점에서다.


그룹 관계자는 "채권단이 그동안 수차례 생명보유 주식을 매각하려 했다가 불발된 이유도 이 때문"이라며 "삼성전자 등 계열사를 통해 사들이기에도 매입부담이 너무 크다"고 설명했다.

설령 233만주를 단일 투자자에게 매각해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현재 삼성생명의 총 주식 수는 2000만주.단일 투자자가 233만주를 사들이면 11.7%의 지분을 확보하게 돼 현 최대주주인 삼성에버랜드(13.34%)에 이어 2대 주주로 등극한다.삼성 입장에서는 경영권 위협에 긴장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삼성생명을 상장시켜 그 차익을 채권단에 지급하는 방법이다.하지만 삼성생명이 상장될 경우 삼성그룹의 지배구조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게 삼성이 안고 있는 딜레마다.

현재 삼성생명의 최대주주는 266만8800주를 보유한 에버랜드로,에버랜드의 총 자산 중 생명이 차지하는 비중은 49%에 달한다.삼성생명이 상장되면 에버랜드 총자산에서 생명이 차지하는 비중은 60%를 훌쩍 넘게 돼 에버랜드는 금융지주회사로 분류된다.

이 경우 에버랜드는 금융지주회사특별법에 따라 직접적으로나 자회사인 삼성생명을 통해서나 삼성전자 지분을 보유할 수 없게 된다.'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삼성그룹의 순환출자구도에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는 셈이다.

그룹 관계자는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논의도 없는 상태에서 삼성차 부실문제로 삼성생명을 상장시킬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비자금 특검 때문에 곤혹스러운데 삼성차 문제까지 겹쳐 골치만 아프다"고 토로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