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5월의 기억이다.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였다.미국에 출장 간 기자는 송고한 기사를 놓고 국제 전화로 데스크와 가벼운 논쟁을 벌였다.'대통령은 동행 기자들과 간담회에서…'라는 대목을 놓고서였다.

이전 관행을 떠올린 데스크는 '동행'이란 단어가 걸렸던 것이다.청와대 전용기로,대통령을 따라갔는데… 라며 '수행'이란 말로 고치려던 찰나였다.

"그래도 국가 원수 아니냐? 전에 그런 표현을 썼고."(데스크)

"우리 회사 돈으로 항공료,숙박비 다 냈고 전화와 인터넷 사용료까지 모두 회사 부담의 출장입니다.더구나 대통령과 기자가 상하 관계입니까."(기자)

적어도 그 이후 한국경제신문에서는 동행 기자라고 썼다.기업인들도 마찬가지였다.청와대 쪽 설명이나 배포 자료의 표현은 왔다갔다했지만 대통령과 함께 움직인 재계 인사들에 대해 '동행 경제인'이라고 썼다.물론 장관이니 보좌관이니 하는 이들은 자기 윗사람인 대통령을 수행한 것이 맞다.

각하란 말은 없어졌지만 청와대에는 아직 특별한 말들이 많다.출장 대신 순방이고,수여식이라면 쉬울 것을 웬만한 국어사전에도 없는 친수식이란 말을 쓴다.하사금,말씀자료,관저,집무실… 등등 무거운 말도 많다.

이러니 일선 공무원들은 한 술 더 뜬다.발표문에다 '김양건 통전 부장이 남쪽의 주요 산업시설을 시찰하고…'라 한다.

방문이나 둘러본다가 객관적 용어일 텐데 시찰이라며 북의 노동당 간부를 받든다.공무원들 스스로도 자각 못한 그 의식 속엔 고정 관념이 깊게 깔려 있다.'장관급인데 좀 높은 처지에서 폼잡고 둘러보니 당연히 시찰이지'라는.

이렇게 된 데는 관(官)이라는 공무원들 의식 수준뿐 아니라 상당수 식자층의 잘못도 있다.공화국이 된 지가 언제인데 현대를 왕조 시대에 바로 빗대는 오류가 대표적이다.

공무원 중 1호인 대통령을 봉건 시대의 왕과 같이 보고 1~2년짜리 임명 공무원인 장관과 세습 신분제 성격의 정승 판서를 동일시하는 글이 넘치니 말이다.

심지어 시민과 국민,유권자를 예사로 백성이라며 격하한다.로마 제국의 지배자 아우구스투스가 스스로를 '(황제가 아니라) 제1의 시민'이라는 의미의 '프린켑스(princeps)'라 한 것이 물경 2000년 전 일이다.

말이 갖는 어감과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회의와 보고,회동과 면담,연설과 대화가 효과를 내자면 자유롭게 통하는 언어,같은 말을 써야 한다.

대통령 주변의 용어에 거품을 빼고 적절한 말과 표현을 찾아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언어는 존재의 집'(마르틴 하이데거)이라고도 하지 않는가.

이런 차원에서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겠다"는 이명박 당선인의 당선 일성이 주목된다.청와대의 휘장인 봉황 그림까지 떼겠다는 의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제국 시대,중국 황제와 그 자손을 용자봉손(龍子鳳孫)이라 했으니 차제에 청와대 상징물은 남기되 봉황은 제왕 시대로 도로 날려 보낸다면 의미가 크겠다.

낮은 자세라 해서 과도하게 낮출 필요는 없다.법과 상식에 따른 합리적,현대적 리더십을 발휘하면 된다.오히려 지나치게 낮춘다면 본인이 내세우는 실용의 선을 넘어 또 다른 포퓰리즘으로 비칠지도 모른다.

허원순 정치부 차장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