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봉 < 중앙대 교수·경제학 >

10년 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후 우리경제가 겪은 구조조정의 혹독함은 실로 필설(筆舌)로 그리기 어렵다.당시 30대 대기업 중 13개만 생존했고 은행은 33개 중 17개만 남았다.대기업과 은행이 이 지경이었으니 중소기업과 자영업 종사자들의 비극은 어떠했겠는가.우리경제가 오늘날 세계 13대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이들의 희생 덕분이다.

그러나 공공부문은 완전히 무임승차했다.김대중 정부의 '공공부문개혁'이란 철저히 '빈탕'이었고,노무현 시대에서는 오히려 일보 전진해 '정부와 공기업의 황금시대'를 노래했다.지난 4년여 간 국가부채는 170조원이 늘고,공무원은 계산에 따라 5만명 내지 9만명이 늘어났다고 한다.청와대와 국무총리실을 마구 확대했고,수백개 위원회를 설치했으며,정부 고위직이 덩달아 늘어났다.두 정부는 국민이 시련을 겪을 때 무임승차는 물론 국민 돈을 빚내어 호탕하게 잔치를 벌인 것이다.

따라서 이명박 차기정부는 이런 방탕한 정부에 메스를 들기로 약속하고 들어온 것이다.그 인수위원회의 첫 작품이 통일부,여성부,해양수산부 등 5부 2처를 폐지하겠다는 정부조직 개편안이다.이것은 겨우 출발점에 불과한데,벌써부터 조직재편에 따른 7000명 감축인력도 어찌 처리할까 갈팡질팡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병귀신속(兵貴神速)이 필요한 때인 만큼 새 정부 축소안에는 옥석(玉石)을 가리지 못하는 시행착오도 있을 법하다.

그러나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시도하는 본격적 정부 축소다.그 성패가 차기 정부의 향후 좌표를 설정할 터인데,이것이 출발부터 좌절된다면 앞으로 기세 오른 저항 집단을 무슨 수로 꺾을 것인가.

이미 예상한 대로 통폐합될 부서들은 거세게 저항하고 있다.이들의 수법은 산하조직을 총동원하고 관련 국회의원을 낙선시키겠다고 협박하는 것이다.이들의 공통점은 국가자원이 자기 집단에만 집중되어야 마땅하다는 믿음이다.해양수산부는 '쇄국정책''망국으로 가는 길'이라며 차기정부를 규탄하고 여성부는 "아직 때가 안됐다"고 주장한다.이런 주장에 부화(附和)하는 사람들은 세계 30대 경제대국에 여성부가 있는 나라가 있는지,일본 영국 등에 해양수산부가 따로 있는지 우선 돌아봐야 한다.

통일부가 지난날 해온 일이란 북의 김씨 정권의 환심을 사고 그를 지켜주기 위해 무조건 퍼준 일이다.그 대가로 우리는 북한 정권의 인민인권 유린을 외면,변호하는 수치스런 나라가 됐고 미국 일본과의 외교관계를 희생시켰다.북한은 핵을 개발한 나라가 된 반면,그 인민은 스스로 정권을 선택하고 경제 자립할 기회를 잃었다.이명박 정부는 이런 친북 지상(至上)정책을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국민의 뜻을 담고 출범하는 것이다.따라서 통일부 폐지만큼 새 정부의 시대정신을 설정하는 일이 없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이 "통일부 안 없애면 나라 망하냐"고 할 만큼 통일부는 좌파세력이 신단(神壇)으로 수호하는 곳이다.이에 호응하듯 최근에는 통일부를 존치하는 방향으로 대통합민주신당과 한나라당이 물밑 조율을 진행하고 있다는 뉴스가 흘러나오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통일부,여성가족부 폐지는 정부개편안의 백미(白眉)다.이게 빠진다면 정부조직개편을 무엇하러 하는가.차라리 아무것도 안 함만 못하다.

이명박 차기정부는 통일부 협상으로 향후 무엇을 잃을지 잘 파악해야 할 것이다.국회의원들도 지금 국민의 뜻을 잘 헤아려야 이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