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鄭奎載) < 논설위원ㆍ경제교육연구소장 >

이명박 정부의 경제살리기 준비가 겉도는 느낌이다.아이디어는 속출이지만 쓸 만한 것은 없다.통신요금 내리고 신용불량자 사면하자는 등의 주장만 해도 다만 그럴 듯할 뿐이다.부동산세는 잘못 만졌다가 큰코 다칠 게 뻔하고,유류세 인하는 국제유가가 며칠만 올라버리면 도루묵이다.산업은행 팔아 중소기업 자금 지원 늘린다는데 그나마 목을 매고 있는 지경이고 대운하는 하겠다는 것인지 안하겠다는 것인지 국민들도 헷갈린다.국가 경제가 한두 개 그럴싸한 아이디어로 죽고 산다면,노무현 정부 아니라 그 어떤 바보정부라 한들 할 수 없겠는가.아이디어로 경제를 살릴 수 있다면 별별 아이디어를 한보따리씩 들고 길게 줄을 서있는 대학교수들이 벌써 우리 경제를 선진국형으로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어설픈 기획가 대학 교수라면 참여정부가 결코 못지 않았었다.

결국 인수위는 10여일 동안 주변 식당가 밥값만 축낸 채 경제성장률 아닌 잠재성장률을 7%로 올려놓겠다는 하나마나한 소리를 내놓는데 그치고 있다.생각의 착점(着點)이 엉뚱한 데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산업은행 민영화하고 그 돈으로 KIF(한국투자펀드)라는 것을 설립해 중소기업 지원하겠다는 것을 아이디어라고 내놓는 식이라면 이명박 정부도 볼 일이 없다.노무현 정부에서 KIC(한국투자공사)라는 것을 만드니까 우리는 KIF라는 것을 만들자는 것이었다면 그 머리도 뻔하다.중소기업 대출 잔액이 300조원이 넘는 터에 돈이 없어서 중소기업이 죽고 있다는 것인지. 대학 교수라는 사람들의 아이디어라는 것은 '임자 없는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데는 이골이 나 있다.

금융허브 코리아를 만들자는 주장이라면 더욱 그렇다.무슨무슨 중동 왕자의 비자금 한두 뭉치를 들여와서 금융허브가 된다면 애들이 웃지 않겠는가. 당선인 스스로도 지난주 은행장들을 만나 한국 금융은 IB업무가 약하다는 말을 했다지만 금융계 일각에서 주장하듯이 우리 자본을 골드만삭스나 메릴린치 주식에 투자한다고 한국 금융이 국제적인 플레이어가 된다면 착각은 자유다.

외환위기 이래 선진금융 배운다며 온갖 투기자본까지 끌어왔지만 국내 은행 매입해간 외국은행들에서 선진금융 배웠다는 이야기는 귀를 씻고도 들어본 적이 없다.최근에는 오히려 "이런 기발한 상품도 있습니까"라며 배워간다는 뒷소문만 난무한다.

국제금융업무가 약한 것은 경험의 부재 탓이라 하겠지만 투자은행 업무가 약한 근본적인 이유를 대라면 그것은 하나도 둘도 자금력의 부족이다.우리나라에서 판을 친 것이 외국 투자은행이었다고 해서 국제금융시장에서 투자은행이 온통 맹위를 떨치고 있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골드만삭스라고 해보았자 씨티 등 대형 상업은행에 비기면 조족지혈일 뿐이다.은행 육성한다고 펀드다 보험이다 엉뚱한 일만 해온 것이 저간의 사정 아닌가.

당선인을 속이는 기발한 아이디어는 김경준 하나로 족한 것이다.지금에 와서 은행들이 제 돈이 모자라 아우성인 이유를 당국이며 인수위 사람들은 아는지 모르는지.눈에 띄는 아이디어로 당선인의 귀를 홀리려는 기획가들이 줄을 섰으니 우리 경제를 한걸음 한걸음 진짜로 키워나가는 일은 누가 챙기고 있는지.

금산분리 완화 문제만 해도 그렇다.은행 지분에 대한 산업자본의 컨소시엄 투자를 유도하겠다는 발상은 재벌의 여윳돈 끌어다가 국정 과제 해결하겠다는 것 외엔 별 의미도 없다.또 하나의 주인 없는 은행 만들겠다는,그래서 정부가 민간 돈을 제멋대로 쓰겠다는데 불과하다.도대체 소유권 없는 투자를 기업들이 왜 한다는 말인가.정치권에 속한 사람들은 언제나 남의 돈을 공돈처럼 여기고 있으니 이것은 아예 고질병이다.규제를 없애고 민간이 뛰도록 하는 방법에 매진하라.그것이 정부가 할 일의 전부다.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