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재계의 화두 가운데 하나는 'M&A(인수.합병)'다.현재 매각작업이 진행 중인 대한통운 쌍용건설에 이어 하이닉스반도체 대우조선해양 현대건설 대우인터내셔널 등 재계 판도를 뒤흔들 만한 '초대형 매물'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어서다.

발빠른 대기업들은 이미 자체 'M&A팀'을 가동하며 매물기업에 대한 인수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다.'범(汎) LG그룹'도 M&A 대열에 동참하는 듯한 모습이다.GS는 대우조선해양에 눈독을 들이고 있으며,LS는 대한통운 인수전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LG는 하이닉스를 품에 안을 유일한 '적격자'로 지목되고 있다.

하지만 지난 9일 서울대학교 병원에 마련된 구본무 LG 회장의 모친 빈소에서 만난 LG와 LS의 'M&A 사령탑'들은 M&A에 대해 의외로 보수적인 입장을 나타냈다.강유식 ㈜LG 부회장은 M&A보다는 투자 확대에 무게를 뒀고,구자열 LS전선 부회장은 아예 "지금은 M&A 적기가 아니다"라며 몸집 불리기식 M&A를 경고하고 나섰다.


◆강유식 ㈜LG 부회장

"하이닉스 인수는 검토한 적도 없다."

강유식 ㈜LG 부회장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하이닉스 인수설(說)'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강 부회장은 "LG가 하이닉스를 인수한다는 소문이 자주 나오지만 실제 인수 여부를 검토한 적은 전혀 없다.빼앗을 때는 언제고…"라고 말했다.1999년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빅딜'의 일환으로 LG반도체를 당시 현대전자(현 하이닉스)에 반강제적으로 넘겨준 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

강 부회장은 M&A에 대해서도 다소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그는 "M&A는 A접시에 있는 걸 B접시로 옮기는 것일 뿐 진정한 의미의 투자는 아니다"라며 "M&A는 필연적으로 구조조정을 부르는 만큼 '일자리 창출'을 바라는 국민 여망과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신 '진정한 의미'의 투자를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강 부회장은 "올해 투자규모는 지난해(8조원)보다 30%가량 늘어난 11조원 수준이 될 것"이라며 "대형TV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LCD 등에 대한 투자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올해 매출 목표에 대해선 "100조원 가까이 하고 싶다"고 말했다.LG의 지난해 매출목표는 92조원이었다.

강 부회장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건설업 및 광고업 진출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그는 "LG의 내부 물량이 상당하다는 이유만으로 건설업이나 광고업에 진출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며 "결국 이런 안일한 생각이 10년 전 외환위기를 부른 원흉이 아니었느냐"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이라면 자체 건설회사를 가져야 한다'거나 '광고회사를 차리면 LG전자 광고만으로 충분히 이익을 낼 수 있다'는 견해도 있지만 이런 식으로 사업해선 절대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며 "일본이나 미국 대기업들이 건설사를 보유하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강 부회장은 향후 LG그룹의 신규사업에 대해 "새로 떠오를 산업이 무엇인지를 놓고 한없이 고민하고 있다"며 "머지않은 시기에 답을 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자열 LS전선 부회장

"대한통운은 M&A를 공부하기 위해 뛰어든 것일 뿐,지금은 M&A 시점으로 적합하지 않다."

JS전선(옛 진로산업) 국제상사 델타투자자문 등을 잇따라 인수하며 M&A시장의 '다크호스'로 떠오른 LS전선의 구자열 부회장은 예상과 달리 'M&A 신중론'을 펼쳤다.이유는 간단했다.M&A 대상 기업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은데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담보대출) 사태 여파로 국제 금융시장이 불안한 만큼 섣불리 인수했다간 자칫 유동성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구 부회장은 대한통운과 대우조선해양을 예로 들었다.그는 "대한통운의 경우 금호아시아나 한진 등 너무 많은 기업들이 인수전에 몰린 탓에 가격이 지나치게 올라버렸다"며 "대우조선해양도 8조원으로 추정되는 인수가는 (기업가치에 비해) 지나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LS가 대한통운 인수전에 뛰어든 이유에 대해선 "향후 추진할 M&A에 필요한 노하우를 쌓기 위한 전략일 뿐 실제 인수를 염두에 둔 건 아니다"라며 "M&A팀 직원들이 많은 것을 배우고 있는 만큼 향후 M&A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 부회장은 그러나 "주력인 전선사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해외 전선업체를 M&A해야 할 필요성은 느끼고 있다"며 "해외 전선업체에 대한 M&A 정보는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구 부회장은 '혁신 전도사'라는 별명답게 지난해부터 추진한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을 해외 사업장으로 확대하고,6시그마 등 혁신활동을 한층 강화하는 것을 올해 핵심 사업과제로 꼽았다.지난해 인수한 국제상사의 '프로스펙스' 브랜드에 대해선 "올해를 프로스펙스가 고급 브랜드로 거듭나는 원년으로 삼겠다"고 강조했다.최근 국제상사가 BMW 오토바이 판매사를 설립한 것 역시 "국민 브랜드에서 고급 브랜드로 재탄생시키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구 부회장은 2004년 인수한 JS전선에 대해선 "해외 전선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LS전선과 상당 기간 내부 경쟁체제로 가져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오상헌.김현예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