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는 찬란했지만 과정은 참담했다.이명박 당선자의 승리는 단순한 표차를 뛰어넘는 완승이다.'자녀 위장취업'이나 'BBK의혹'같은 핵폭탄을 잠재워버린 무서운 저력을 보여줬다.

과정은 우울했다.오죽했으면 로이터통신이 한나라당에서 '개'(dog)를 내세웠어도 이겼을 것이라고 보도했을까. 한 분석가의 조크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노무현 좌파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지독한 반감 때문에 보수진영에서 누굴 보내도 승리했을 것이라는 그 같은 조롱은 우리를 슬프게 했다.

그래도 국민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첫 최고경영자(CEO) 출신이고 편가르기에 찌든 '여의도 정치'에 덜 바랜 새 인물이라는 점에서 많은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는 기대가 그 어느때보다 높다.어쩌면 그런 기대치가 너무 높아 실망으로 변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다.

경제공약의 핵심인 '747'(7% 경제성장,국민소득 4만달러 달성,7대 강국진입) 도 첫 해부터 어긋날 공산이 크다.당선자가 취임 일성으로 투자활성화와 외자유치를 내걸었지만 내년 세계경제전망은 7% 성장을 불가능하게 할 만큼 어둡다.리언 시걸 미국 사회과학연구협회 동북아안보협력 프로젝트 국장도 "세계경제가 나빠질 경우 이 당선자가 정치적 위기를 맞을 공산이 크다"고 지적했다.

투자활성화는 어떤가.대기업들의 투자를 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수도권 규제다.지방에 기업도시 혁신도시를 아무리 만들어도 소용없다.이 당선자가 수도권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제칠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어디 그 뿐인가.이 당선자가 공약으로 내건 매년 60만명 일자리 창출도 신기루로 끝날지 모른다.노무현 정부가 최근 3년간 매년 30만명 정도밖에 고용을 창출하지 못한 것은 반기업정서도 작용했지만 환경 탓도 크다.중국으로 동남아로 공장을 옮길 수밖에 없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이들을 U턴시키지 못하는 한 60만명은 언감생심이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강성 노조와도 전쟁을 치러야 한다.고용 창출은 역설적으로 기존 근로자들을 필요할 때마다 어려움 없이 정리할 수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자동차가 빨리 달릴 수 있는 것은 브레이크가 있기 때문이라는 단순한 이치와 똑같다. 브레이크라는 안전장치가 없다면 시속 100㎞,200㎞로 속도를 올릴 수 없다.이 당선자에게 지지를 보내지 않은 민주노총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발전적 노동시장 개혁을 합의해내야 한다.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다. 본지가 시리즈로 싣고 있는 '당선자에게 바란다'기획의 앞머리에 "공약에 얽매이지 마라"고 조언한 것도 그런 사정 때문이다.

외신들은 이 당선자 승리의 일등공신으로 경제회생에 대한 국민의 간절한 바람을 들었다.유세기간 내내 경제를 살리겠다는 당선자의 목소리가 국민의 폐부를 파고들었다는 것이다.경제살리기 염원은 IMF 외환위기를 겪은 직후의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신용카드 위기 직후의 노무현 대통령 때도 지금보다 결코 낮지 않았다.

지도자가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라는 희망만으로 경제가 단숨에 좋아지지 않는다.희망을 성과로 얽어내기위해선 난제들과의 또다른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당선의 기쁨에 취하고 과도한 기대만을 불어넣을 일이 아니다.

고광철 국제부장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