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張錫周) < 시인·문학평론가 >

마침내 선거일이 밝았다.

이번 선거는 보수와 진보의 치열한 맞섬도 아니고 후보자들 사이의 다른 공약과 비전과 이념의 뜨거운 겨룸도 아니었다.

최선이 없다면 차선(次善)을 고르는 게 일반적인 관례다.

그런데 이번 선거는 누가 차악(次惡)인가를 놓고 격론을 벌이며 네거티브 경쟁을 해나가는 양상으로 흘러갔다.

그래서 후보자들은 제 정책과 비전을 알리기보다는 상대 후보의 비리 혐의를 들춰내고 물고 늘어지는 추악한 정치 행태를 드러냈다.

정작 여러 후보자들이 흠결이 많다고 지적한 후보가 지지율이 가장 높고 그 가파른 지지세는 막판까지 이어졌다.

도덕과 윤리,이념적 정체성,공약의 합리성 따위의 잣대가 도무지 통하지 않는 참 이상한 양태의 선거여서 지켜보는 것이 지루하고 따분할 정도였다.

정치 전반에 대한 싸늘하게 식은 민심과 냉소주의는 자업자득이다.

그나마 노무현 정권의 실정(失政)에 대한 심판론,경제제일주의론,보수 안정론이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은 듯하다.

후보자 간의 지저분한 싸움에 진저리치는 많은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역대 대통령 선거 중에서 투표율이 가장 낮을 거라는 전문가들의 전망도 일찌감치 나와 있다.

물론 그렇게 된 데에는 정치판과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후보자들의 책임이 크다.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을 만한 비전과 진정성이 그이들에게는 모자랐다.

그러나 아무리 화가 나고 실망이 크더라도 투표를 해야 한다.

냉정하게 보자.새 대통령은 파고(波高)가 높은 21세기의 세계를 항해할 한국호의 새 선장이다.

한국의 내일과 운명은 불가피하게 그 선장에게 달려 있다.

우리가 투표하지 않는다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부화뇌동하는 표를 싹쓸이해 새 대통령이 된 이가 민심을 다 얻은 듯 착각해 오만방자해질 수 있다.

자칫하면 민심과 여론을 볼모로 일꾼이 나라의 주인들에게 함부로 명령하고 복종을 강요하는 불손한 통치자로 변할지도 모른다.

이 사회는 다시 혼란과 소란에 빠져들고,그 틈을 타 파시즘과 독재정치의 싹들이 돋아날지도 모른다.

어떻게 키워온 민주주의인가.

다시 암울한 반민주주의 시대로 시계바늘을 되돌릴 수는 없다.

선거는 민주주의라는 목마른 묘목들에 물을 주는 것이다.

대통령을 뽑는 선거에서 내 한 표의 행사는 신성한 정치 참여다.

더러는 가망이 없어 보이는 후보에게 한 표를 던질 수도 있고,대다수 사람들은 당선이 유력해 보이는 후보에게 한 표를 던질 수도 있다.

어떤 표는 대통령을 만들고 어떤 표는 사표(死票)가 될 것이다.

그러나 한 표의 가치는 똑같다.

누구를 선택했든 그 한 표의 가치는 천금의 가치를 갖는다.

투표 기권은 민주주의의 참정권이라는 신성한 권리이자 의무의 망실이다.

비전이 없는 후보자에게 표를 던지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더 나쁜 건 기권하는 것이다.

기권할 생각이었다면 부디 그 생각을 바꾸기 바란다.

후보자들이 내세운 비전과 정책과 능력을 따져보고 투표를 하자.공약(公約)과 말에 유권자를 현혹하는 사탕발림과 부풀림은 없는가.

대통령이 된 다음에 국민에게 약속한 공약과 정책을 성실하게 실천할 만한 도덕성과 실천의지가 있는가.

누가 서민과 소수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지켜줄 것인가.

우리 앞에는 사회 양극화,청년 실업문제,치솟는 물가,남북 경제협력과 평화공존,공교육의 부실화,사교육비의 부담 등 난제들이 산적해 있다.

나는 새 대통령이 이런 난제들을 풀어갈 능력과 함께 겸허함과 강인함을 갖춘 분이기를 희망한다.

국민 앞에서는 자신을 낮춰 겸허함을 보이고,방만하게 흐트러진 공공 부문의 혁신을 이끌 때는 강철 같은 강인함을 보여주는 대통령 말이다.

일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겐 일자리를,집 갖기를 원하는 사람에겐 집을,대학에서 교육 받기를 원하는 사람에겐 교육의 기회를 주는 대통령 말이다.

21세기를 내다보며 유연한 사고를 갖춘,자신감은 넘치고,세계주의적인 비전을 가진 이가 우리의 새 대통령이 되길 기대하며 내 한 표를 찍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