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편의 흥행을 등에 업고 제작하는 속편은 재미를 못본다'는 영화계의 속설은 정치판에서만큼은 예외인 것 같다.

대부분의 언론은 지난 5일 BBK주가조작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발표로 '김경준 논란'은 일단락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지난 나흘간 여의도에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은 이런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음을 보여준다.

오히려 본편에 해당하는 BBK의혹보다 속편인 수사 배경에 대한 논란이 흥행몰이가 되고 있다.

수사결과 발표 다음 날인 6일 서울 중앙지검으로 김경준씨를 찾아간 대통합민주신당 의원들은 "김씨가 검찰 발표 내용은 대부분 조작된 것이라고 말했다"며 검찰 발표 내용 전부가 '이명박 눈치 보기'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연일 유세와 규탄대회를 통해 검찰을 공격하는 한편 '정치검찰 진상규명 특위'를 구성해 비행을 낱낱이 폭로하겠다는 각오다.

한나라당도 지지 않고 김씨의 감방 동료라는 미국인 범죄자의 입을 빌려 "김씨의 입국과정에 정부 고위층과의 거래가 있다"며 관련 내용을 정치쟁점화했다.

2일 'BBK관련 논란은 끝'이라며 논쟁에 휘말리지 않겠다고 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서다.

공격대상은 정반대이지만 양당 주장의 배경에는 공통점이 있다.

근거가 모두 피의자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그리고 주장이 나온 장소가 변호인 면회실로 제한된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는 밀폐된 곳이라는 점이다.

제도의 권위보다 음모론이 판을 치는 상황이다.

때문에 검찰의 수사결과발표도,신당의 공세에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정부의 입장표명도 빛을 잃을 수밖에 없다.

참여정부 탄생에 앞장 선 범여권이 검찰발표를 조작이라고 몰아붙이는 태도와 이에 미국 범죄자의 말로 맞서는 야당의 모습은 똑같이 국민을 당혹스럽게 한다.

국회의원은 특정 정당의 소속이기 이전에 입법부의 일원으로서 국가의 법을 만들고 헌법을 수호할 책무가 있다.

스스로 사법제도의 권위와 나라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국민들에게 12월19일 탄생할 정부를 신뢰해달라고 할 수 있을까.

양당 모두 집권 여부를 떠나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노경목 정치부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