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남자는 억울하다.

예외도 있다지만 대부분은 결혼하면 빈털터리가 된다.

월급은 몽땅 통장으로 입급되고 그 통장은 아내가 관리하니 용돈 이상은 만져보기 힘들다.

경조사비가 유독 많을 때도 있고 가끔 한 턱 내기도 해야 하건만 아내에게 타서 쓰려면 여간 눈치보이는 게 아니다.

내가 번 돈이라지만 살림하기에도 빠듯하다는 아내에게 손을 내밀기 어렵기 때문이다.

도리없이 마이너스통장을 만들거나 주위에서 빌려쓰곤 성과급이나 연월차수당을 받아 갚는데 이 또한 감추기 쉽지 않은데다 주5일제 실시 이후 연월차수당도 없어지고 있어 난감하다는 게 중론이다.

쌈짓돈을 만들 방법이 없다는 얘기다.

그에 비하면 대한민국 아내들은 마술사다.

빤한 월급으로 생활하고 아이들 사교육 시키고 저축도 해서 집을 장만하거나 늘린다.

게다가 쌈짓돈까지 모은다.

한 일간지와 여론조사업체 '엠브레인'이 11월 전국 기혼여성 613명에게 물어봤더니 응답자의 65.3%가 "비자금이 있다"고 했다는 발표다.

한 달 전께 주부커뮤니티 사이트 미즈에서 내놓은 설문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유 또한 비슷하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혹은 '갖고 있으면 마음이 놓인다' 등이 그것이다.

일종의 보험인 셈이다.

방법은 생활비에서 쪼개거나 주식·펀드 등의 재테크를 활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부가 각기 주머니돈 내지 쌈짓돈을 챙기려 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돈에 관한한 공동운명체라는 부부끼리도 터놓고 말하기 힘든 부분이 있고 모르는 게 약인 수도 있다고 여기는 게 그것이다.

실제 남편과 아내 모두 비자금의 용처 가운데 하나가 본가와 친정집 일에 보내는 돈이라는 마당이다.

여자들은 심지어 자식에게 들어가는 돈도 남편에게 말하기 곤란할 때가 있다고 한다.

쌈짓돈이 있어봤자 58%가 '한 달 용돈 10만원 이하'라면서도 63.7%가 남편에게 절대 알리지 않겠다는 건 바로 그래서일지 모른다.

가정을 꾸리는 주부의 사정이 이러니 말 못할 일 많은 기업의 입장은 오죽하랴.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