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秉柱 < 서강대 명예교수·경제학 >

대중매체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보면 나라가 곧 망할 것 같다.

연일 부정비리 사건사고 보도가 눈과 귀를 아프게 한다.

조만간 세상 종말이 올 듯싶다.

엊그제 발표된 유엔개발계획(UNDP) 인간개발지수 보고에 따르면 '삶의 질'에 있어서 세계 177개국 가운데 아이슬랜드가 노르웨이를 누르고 1위로 올라섰고,한국은 작년에 이어 26위를 지켰다.

일본 8위,미국 10위,홍콩 21위,싱가포르 25위 다음이다.

요즘 잘나간다는 중국과 인도는 81위와 128위로 저만큼 처져 있다.

국제적으로 비교하면 한국이 살만한 나라로 평가되고 있다는 얘기다.

일반적으로 대중매체들은 근시안적으로 편집하는 경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당리당략에 따라 세상만사를 왜곡하는 것이 정치권의 생리다.

요즘 부정비리 보도가 부쩍 늘어난 것이 대통령 선거와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선거 한철 장사로 몇 해 먹을 거리를 장만하는 선거 엔지니어들이 메뚜기 떼처럼 모여 머리를 짠 계획들이 각본대로 목하 연출되고 있다.

누가 뭐래도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밑바탕 작업은 경제를 튼튼하게 하는 일이다.

어떤 궤변으로도 국민을 먹여 살리는 것이 정치권도 비정부기구(NGO)도 아니고 기업이라는 사실을 호도(糊塗)하지 못한다.

'삶의 질'순위 26위가 GDP 순위 12위에 기초한 것이지 정치가 훌륭했거나 데모가 전투적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투표일을 앞두고 국민의 불안은 하루하루 가중되고 있다.

국민의 불안은 취업과 소득 등 경제 불안정과 북핵이 제기하는 안보 위협으로 압축된다.

올해도 투표장에 나설 유권자들의 발걸음이 무거울 것이다.

주식시장의 투자 고수들은 미인 선발 대회에서 자기가 선호하는 후보가 아니라 다수가 좋아할 후보를 선택해야 재미본다고 훈수하다.

적어도 이번 정치판에서는 선호는커녕 혐오감이 상대적으로 적은 후보,혐오감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불안을 덜어줄 후보를 선택하게 될 듯싶다.

이번 선거에 나선 후보가 많다.

아직도 건설현장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후보,두번이나 다 된 죽 못먹고 실망시킨 후보,나이 많은 사람들은 투표하지도 말라며 북한 퍼주기에 힘쓰는 후보,신종기업인을 자처하는 후보 등이 어울려 경합을 벌이고 있다.

성인군자를 받들어 오랫동안 군주로 모시던 전설속 요순시대는 갔다.

현재는 도덕군자 멸종시대다.

굳이 군자를 찾을 일이 아니라 짧은 재임기간에 주요국정 과제를 바로 선택해 역량을 집중함으로써 가시적으로 실적을 올릴 능력여하를 판단기준으로 삼으면 된다.

정책 내용보다 상대방 흠집내기 공방전으로 진행되는 유권자 표몰이 보도가 대중매체를 도배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네거티브에 가려진 포지티브를 읽는 기법을 터득한듯 여론조사 수치변동이 크지 않다.

과거 재미 보았던 흑석선전 약효가 반감된 때문이리라.

김경준 귀국소동,김용철 변호사 호루라기 불기 등으로 소란이 고조되고 있지만,그것이 나라 망하는 굉음인 것만이 아니다.

BBK사건은 곧 검찰 수사결과 발표로 진상이 들어나겠지만,환란(換亂) 이후 국경을 넘나들던 '검은 머리 외국인'들의 연금술 사기행각에 내로라는 경제인들도 말려들 수 있었음을 보여주는 교육효과가 기대된다.

거액의 보수를 챙긴뒤 비자금 비리를 물어 제기된 삼성그룹 사건은 아무리 세계 브랜드 기업으로 떴지만 지배구조 개선과 경영투명성 제고에 더욱 진력(盡力)하라는 경고인 동시에 국가권력에 눌려 살아온 기업의 자기보호 몸짓으로 풀이된다.

소란스러운 선거유세도 이제 3주안으로 마감한다.

경제에 총매진하는 정부가 들어서야 한다.

한국 기업들이 국제경쟁력에 치명상을 입은지 오래다.

정치는 기업의욕을 고취시켜 신나는 경제여건을 만들어 줄 수 있는 마술을 부릴 수 있다.

세계경제 바다에 암초 여울목으로 한국호(?)를 몰고가며 '진보적'항해술이라고 고집하던 조타수(操舵手)와 승무원 일행이 하선 채비할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