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 < 시인 >

첫눈이 내리고 살얼음이 얼면 나는 절에 가고 싶어진다.

백담사도 좋고 월정사도 좋다.

세속의 속악한 인심과 거칠고 뜬구름 같은 거짓의 말로부터 최대한 멀리 가고 싶다.

백담사는 동천(冬天)과 물소리가 좋다.

쏟아지는 별과 천장이 없는 하늘과 계곡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이 좋다.

백담사에 가면 얼음장이 끼고 꺼지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우러르는 동천과 흐르는 계곡물은 사람의 근심을 베어간다.

두 해 전 찾아가 묵었던 월정사의 빈방도 생각난다.

잠결로부터 나를 흔들어 깨우던 범종소리와,대웅전의 차가운 바닥과,목탁소리와,찬물에 세수를 하고 난 후의 느낌 같은 명징한 새벽이 좋다.

거대한 침묵인 전나무 숲길을 산책하거나,작은 운판을 두드리듯 우는 새들의 아침을 따라 상원사까지 느리게 걸어가는 시간도 좋다.

급하지 않게 차츰차츰,조용하게,쌀알을 세듯 자상하게 맞이하던 그 시간이 다시 그리워진다.

오늘은 때마침 동안거 결제일이다.

여름과 겨울 두 철에 걸친 안거(安居) 기간 동안 스님들은 외부와의 출입을 끊고 참선 수행에 몰두한다.

안거는 우리나라 불교의 오랜 전통이다.

오늘은 그 안거를 시작하는 결제일이다.

결제를 맞는 스님들의 살림은 아주 단출하다.

세 벌의 옷과 한 개의 발우만을 소유할 뿐 세속의 살림을 가져가지 않는다.

동안거 기간인 음력 시월 보름부터 다음 해 정월 보름까지 선원에서 생활을 하는 스님들은 면벽수행을 하거나 묵언을 하면서 오로지 자신의 마음을 닦는다.

올해로 열반 14주기를 맞은 성철 스님은 생전에 선방 스님들에게 당부하신 게 있었다.

첫째는 세 시간 이상 자지 말라는 당부였고,둘째는 벙어리처럼 지내며 잡담 하지 말라는 당부였고,셋째는 문맹 같이 일체 문자를 보지 말라는 당부였고,넷째는 포식과 간식을 하지 말라는 당부였고,다섯째는 돌아다니지 말라는 당부였다.

이 당부는 선방의 스님들에게 한 당부이지만,요즘의 우리도 이 당부만큼은 마음에 새겨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내 주변을 돌아보아도 요즘 사람들의 걱정이 태산처럼 크다.

시간은 신속하고,몸은 약속을 깨는 사람처럼 신뢰가 없고,생활은 곤란하고,내일은 불투명하다고 말한다.

하루를 돌아보면 잘못이 많고,밤마다 찾아오는 잠은 회오리처럼 혼란스러워 마음이 고요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마음을 단속하고 어떻게 마음을 사용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에 고통을 얹어주지 않게 될까.

'마음을 지니되 마땅히 돌과 같이 하라.' 이 말은 부처가 출가한 제자에게 이른 말이다.

원문을 보면 돌은 '사방석(四方石)'으로 되어 있다.

네모진 돌을 뜻한다.

왜 네모진 돌과 같이 마음을 지니라고 했을까.

뜰 가운데 있는 네모진 돌은 비가 떨어져도 그것을 깨지 못하고,해가 뜨겁게 비쳐도 그것을 녹이지 못하고,바람이 불어도 그것을 움직이지 못한다고 되어 있다.

비와 해와 바람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으려는 번뇌를 비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마음이 사방석처럼 스스로 지극한 중심의 자리에 있게 되면 우레가 밀려와도 그 정적한 본성을 깨뜨릴 수 없다는 말이겠다.

우리 모두는 존재하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소중한 존재이다.

다른 사람을 덜 탓하고,다른 사람을 더 돕고,다른 사람을 더 행복하게 해 주는 이 일을 잘하는 것이 바로 일상에서의 수행이 아닐까 싶다.

신앙하는 종교가 달라도 많은 사람들은 어느 한 시기를 정해 기도를 하고,계율을 지키고,세속적인 욕망으로부터 떠나려고 한다.

나는 동안거 결제일을 맞아 성철 스님이 선방 스님에게 한 다섯 가지 당부를 생각한다.

나에 대한 고요한 사유와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이타(利他)에 대해 생각한다.

삭발을 하고 동안거 결제에 들어간 스님들의 모습이 눈에 잡힐 듯 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