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하다."

대한상공회의소의 김상열 상근부회장은 22일 '삼성비자금 특검법안'이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숨부터 내쉬었다.

지난 16일 상의를 비롯한 경제 5단체가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끼친다며 '특검 도입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이런 재계의 우려는 뒷전으로 밀린 채 결국 삼성에 대한 전방위 수사가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김 부회장은 "요즘에는 과거와 달리 경영환경이 시시각각 변화하는데 수사가 장기화돼 이런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한다면 삼성의 경쟁력은 반감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재계는 특히 이 같은 삼성의 경영 차질이 경제계 전반에 미칠 악영향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국내 대표기업인 삼성의 위치를 감안할 때 협력업체뿐 아니라 수직적,수평적 관련산업들이 모두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는 "특검이 도입되면 사건의 진실 여부를 떠나 전체 한국 기업들의 이미지와 대외신인도가 손상될 수밖에 없다"며 "이는 경제 전반의 활력 저하와 기업 의욕 상실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특검이 시작부터 정치 논리가 강하게 반영돼 도입됐다는 점도 재계가 우려하는 대목이다.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는 것은 중요하지만,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이른바 '삼성 이슈'가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 헐값 발행,에버랜드의 전환사채 불법 발행 등은 이미 수년 전부터 공론화돼 검찰이 수사를 마친 사안인데 특검이 이를 원점에서부터 다시 조사한다는 것은 절차상으로도 맞지 않을 뿐더러 반(反)삼성,나아가 반기업정서를 계속해서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는 저마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는 각 대선후보의 기업 정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재계는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재계는 특검을 막아낼 마땅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국회의원들을 설득하거나 청와대에 거부권 행사를 요청하는 수밖에 없지만 여야가 합의해 통과한 법안인 만큼 실효성이 없다는 게 재계의 판단이다.

한편 명지대 조동근 교수는 이날 오후 바른사회시민회의 주최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삼성 비자금 의혹을 지렛대로 삼아 정치적 이익을 꾀하려는 것도 부패"라고 주장했다.

조 교수는 "네거티브 캠페인이 정치시장에서 횡행하는 이유는 상벌의 유인 구조가 왜곡돼 있기 때문"이라며 "설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아니면 말고 식'으로 네거티브 캠페인을 벌인 정파의 손해가 크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삼성의 전 법무팀장의 양심선언이 나오자 여권은 '반부패 미래사회 연석회의' 개최를 제안했는데 이는 실체 규명 이전에 삼성 의혹을 지렛대로 선거판을 유리하게 만들려는 정치적 계산에 따른 것"이라고 비판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