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 正 來(김정래) < 부산교대 교수·교육학 >

수능이 끝나고 대학들이 입학전형 방식을 속속 발표하면서 학교 교육에 대한 논란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그 가운데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공약(公約)은 예견된 일이긴 하지만 좌파 포퓰리즘의 극치라 할 만하다.

주요 골자는 0세에서 5세 아이들의 무상보육,고교까지 전면 무상교육 확대,초ㆍ중ㆍ고 급식비 전액 국가보조,학자금 무이자 대출 소득 8분위까지 확대 등이다.

이제 우리는 자녀 교육을 국가가 모두 책임지는 유토피아에 살 것 같은 환상에 빠지게 한다.

정작 이들 공약을 실행할 교육재원 마련도 문제지만,더욱 우려되는 것은 선동적인 계층 양분법에 따라 공약이 나온다는 점이다.

지난해 지방선거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실업고를 방문해 마치 실업고 재학생들이 가진 자들의 기득권 때문에 실업고를 다니는 것처럼 '유세'하더니,얼마 전 정동영 후보는 수도권의 한 산업기술대학을 방문해 '과중한 입시 부담을 없애준다'는 명분 아래 대학 입시를 폐지하고 학생부(생활기록부)만으로 신입생을 선발할 수 있게 한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기존 수능시험은 합격ㆍ불합격만을 가리는 고교졸업자격시험으로 바꾸고 이 시험에 통과한 학생들은 내신만으로 1년에 2차례 이상 3∼5개 대학에 지원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 공약은 우선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현 정권을 포함하는 범여권은 근거도 희박한 '3불(不)정책'을 고집스럽게 견지해왔다.

그 중 하나인 고교등급제를 허용하지 않고 고등학교 내신만으로 신입생 선발을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 공약을 실현하려면,범여권이 신주 모시듯 하는 3불정책을 폐기하든지 아니면 이 공약을 철회해야 한다.

대입 내신 선발 공약은 그렇지 않아도 고교 평준화처럼 그릇된 평등이념으로 망가진 교육시스템을 대학교육으로 확대해 가겠다는 발상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대학평준화','대학추첨제'를 하자는 것이다.

흔히 우리 교육을 '오리 사육'에 비유하곤 한다.

오리는 땅에서 걷고 물에서 헤엄치는 날개 달린 동물이다.

육ㆍ해ㆍ공을 모두 하는 동물이지만,그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못하는 동물이다.

조류(鳥類)에 속하는 오리가 그 중 제일 못하는 것이 나는 일이다.

평준화 속의 우리 학생들이 꼭 이 처지에 놓여있다.

홍콩의 우수 고등학생들은 홍콩대학에 낙방하면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에 진학한다고 한다.

우리 대입지원자 중에서 고교졸업과 동시에 옥스퍼드와 같은 세계 일류 대학에 곧장 진학하는 경우는 몇이나 될까? '전인교육'이라는 미명 아래 저질러진 경쟁력 없는 평준화 교육시스템은 우리 아이들을 '절름발이 오리'로 만들고 있다.

이것도 모자라서 신당의 공약은 옥스퍼드,하버드,홍콩대학과 같은 경쟁력 있는 세계적 대학으로 만들 생각은 하지 않고 그만그만한 절름발이 오리만을 양산하는 '대학평준화'를 하자는 것이다.

교육학에서 학교제도는 그 발달 계통에 따라 상구형(上構型)과 하구형(下構型)으로 나뉜다.

상구형은 상급학교 입학전형의 준칙을 하급학교의 교육내용과 결과에 맞추는 것이고,하구형은 반대로 상급학교의 입학전형 준칙이 상급학교 교육을 받을 자질이 있는지 여부에 두는 제도다.

전자는 주로 공교육 기반 확충을 위해 초ㆍ중등학교 수준에 적합하며,후자는 경쟁력 있는 인력배출에 필요한 제도다.

하구형에 의하면 대학이 계통의 정점에 서기 때문에 해당 대학은 입학전형에서 본고사 실시 같은 상당한 자율권이 있다.

신당의 대입공약은 전형적인 상구형이지만 그 장점인 공교육 확충도 못하면서 오히려 대학의 자율과 국가경쟁력만을 훼손시킨다.

모든 것을 국가가 책임진다는 식의 신당의 교육공약은 상위 20%를 계속 제거해 모두가 가난해진다는 경제학의 20 대(對) 80 분할에 근거한 것이다.

현 정권이 이제까지 재미를 보아온 이 20 대 80 양분법에 따른 교육공약은 모든 아이들을 미래 사회에 딱 부러지게 잘하는 것 하나 없는 '미완성 오리'로 만드는 위험한 발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