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을금고 연쇄 습격사건' 비리 경찰 역

영화에서 남자 중견 배우들에게 주어지는 엄한 아버지나 자상한 스승 역은 대개 보조적인 역할에 불과하지만 배우 백윤식이 연기하는 아버지와 스승은 단순한 주변인에 머물지 않는다.

'타짜'의 평경장, '싸움의 기술'의 싸움 고수, '천하장사 마돈나'의 씨름 감독 등 그의 캐릭터는 고리타분한 연설이 아니라 현실을 초월한 듯이 툭 던지는 말 한 마디에 세월의 진실을 담는다.

젊은 남자 주인공은 그의 품 안에 뛰어들고 젊은 관객은 그에게 환호한다.

'범죄의 재구성'의 김 선생, '지구를 지켜라'의 강 사장, '그때 그 사람들'의 김 부장 등 현실적인 '나쁜 남자'의 옷도 그가 슬쩍 걸치면 판타지의 색이 덧칠되면서 희극 의상으로 바뀐다.

14일 개봉한 '마을금고 연쇄 습격사건'의 비리 경찰관 구 반장은 그가 이제까지 맡았던 캐릭터 가운데 가장 실제 삶에 가까이 다가간 인물이라고 할 만하다.

구 반장은 겉으로는 사회에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지만 뒤로는 각종 비리를 저지르고 있는 이중적인 캐릭터. 백윤식은 은행 강도 역할을 맡은 이문식과 함께 '투 톱' 체제로 극을 이끌어나간다.

이제까지의 역할보다 현실적인 인물로 보인다는 인상을 전하자 그는 "그런가요"라고 짧게 답한 뒤 너털웃음을 지었다.

"구 반장은 국민을 위해 일하는 경찰관으로서는 아주 유능한데 다른 한편으로는 노후를 위해 '좀 챙기는' 거예요.

정도에서 벗어난 게 문제지. 또 사실 주변에 나눠줄 줄도 아는 사람이거든요.

결국 인간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인물인 셈이죠."

제작진은 애초에 백윤식과 이문식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 작업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그는 "배우 입장에선 선택을 받은 건데 당연히 기뻤다"며 "나를 염두에 두고 열심히 써 줬다고 해 기꺼이 참여했다"고 말했다.

이문식과는 '범죄의 재구성'에서 이미 호흡을 맞췄던 사이. 그는 이문식과 함께 한 연기에 대해 한마디로 '굿(Good)'이라고 표현했다.

"굿이죠, 굿. 다른 말이 뭐 필요한가요.

사석에서도 자주 만나는 편인데 이문식 씨도 성격이 짓궂고, 저도 짓궂고. 둘이 모이면 아주 재밌죠(웃음)."
'영화의 결말이 의외라는 의견도 많았다'고 전하자 그는 "처음에는 시나리오 자체가 두 개였다"며 "마지막 순간까지 제작진이 모두 고민을 많이 해서 결정했고 나 역시 채택된 결말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제작 초기 영화 제목이 '성난 펭귄'이었지만 결국 '마을금고 연쇄 습격사건'으로 개봉하게 된 데 대해 그는 "이제까지 고생한 제작진의 땀이 덜 느껴지는 제목이라 실망하기는 했다"며 "그래도 자식 같은 영화인데 성심껏 밀어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 해에 영화 2~3편을 내놓으며 젊은 시절보다 더 쉴 새 없이 달리고 있는 그에게도 배역에 대한 여한이 있을까.

연기 생활의 장수 비결을 묻자 "그걸 제 입으로 어떻게 말하겠습니까"라고 쑥스러워하면서도 테이블 앞으로 바짝 다가앉으며 진지하게 답한다.

"역할 자체를 기다리기보다는 좋은 작품을 기다리는 거죠. 사실 이제까지 안 해 본 직업이 없을 정도로 다 했잖아요.

그래도 계속 좋은 시나리오를, 좋은 감독을 기다리는 겁니다.

끝없이 기다리고 연기하는 것, 그게 배우니까요."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cheror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