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 俊 石 < 한국산업기술재단 이사장 jsjung88@kotef.or.kr >

위조지폐범들의 표적이 돼온 미국의 100달러짜리 지폐가 60년 만에 새로운 모습으로 내년 말쯤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새 지폐에는 위ㆍ변조 방지를 위해 65만개의 작은 렌즈를 혼합해 인쇄하는 첨단기술을 사용했다고 한다.

지폐를 상하로 흔들면 지폐 속의 인물인 벤자민 프랭클린의 이미지가 좌우로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좌우로 흔들면 상하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해 사실상 위ㆍ변조가 불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화폐에는 초대 재무장관의 얼굴이 있는 10달러짜리 지폐를 제외하고는 1,2,5,20,50달러짜리에 모두 역대 대통령들의 초상이 들어 있다.

그런데 대통령도 해보지 못한 벤자민 프랭클린의 초상이 어떻게 100달러라는 고액권에 자리를 차지하게 됐을까.

그 의미가 항상 궁금했다.

마침 필자는 얼마 전 펜실베이니아주의 몇몇 기관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방문했던 곳 중 '벤 프랭클린 기술파트너'라는 주(州)정부의 기술 지원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기관이 있었다.

1983년에 설립된 이 기관은 기술 창업자와 투자자를 연결해주는 역할은 물론 경영 및 기술 관련 자문 서비스도 제공하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성공적인 기술 창업 종합서비스 기관이다.

알고 보니 벤자민 프랭클린은 토머스 제퍼슨과 함께 미국의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유명한 정치인이자 미국의 정신적 지주로서만이 아니라,피뢰침을 발명하기도 한 저명한 과학기술자이기도 했던 것이다.

미국의 후손들은 바로 벤자민의 기술혁신에 대한 열정,과학자로서의 미국사회에 대한 기여 등 그의 정신적 유산을 계승해 그가 서거한 지 20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을 딴 정부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 이공계 대학 기피 현상이 심화되고 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책의 하나로 과학기술자 우대에 관한 논의가 한창이다.

만일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지폐에,그것도 고액권에 역대 왕이나 장군보다 존경할 만한 과학기술자의 얼굴이 들어 있다면 과학기술자를 존경하고 우대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잡을 수 있지 않을까.

그동안 '새 지폐에 우리 과학자 얼굴 모시기 운동 추진위원회'를 중심으로 정약용 등의 초상을 새 지폐에 넣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 왔으나,일반 국민의 인식이 낮아서 아쉽게도 성사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우리 지폐에도 존경할 만한 과학기술자의 초상을 넣을 때가 됐다는 필자의 생각을 벤자민 프랭클린이 듣는다면 새 100달러짜리 지폐를 좌우로 흔들 때처럼 벤자민이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