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한탄이며,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어두워 오는데 아이야니 눈을 맞을,…/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시인 백석은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서 고향을 떠나 객지를 떠도는 이의 설움과 각오를 이렇게 적었다.

세월이 흘러 시대와 세상 모두 변했어도 시(詩)는 힘든 처지에 놓인,혹은 삶의 길을 놓치고 방황하는 이에게 기운을 차리고 일어나 세상 속으로 걸어갈 마음을 다잡게 한다.

사랑하는 아내를 비롯한 가족의 안부도 모른 채 저 북방 춥고 쓸쓸한 여관방에서 외로움에 떨었을 시인의 모습에 자신을 투영시키노라면 어느 틈에 가슴 한 켠에 '굳고 정한' 갈매나무 한 그루가 자리잡는 까닭이다.

좋은 시는 이렇게 시간을 뛰어넘어 언제 어디서든 읽는 사람의 아픔과 슬픔을 치유하고 정신을 가다듬도록 해준다.

올해는 육당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효시로 한국 현대시 100년이 되는 해.한국시인협회가 이를 기념해 한국 현대시사의 대표시인 10명과 그 대표작을 선정,발표했다.

문학평론가 10명이 뽑은 10대 시인은 김소월 한용운 서정주 정지용 백석 김수영 이상 김춘수 윤동주 박목월.

각 시인의 대표작은 '진달래꽃''님의 침묵''동천''유리창''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풀''꽃을 위한 서시''오감도''또다른 고향''나그네'.나이든 세대에게 백석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 낯설다면 낯설까 나머지는 대부분 교과서에 실린 작품으로 누구에게나 익숙하고 친근한 것들이다.

시에 관한한 누구의 어떤 작품이 더 뛰어나다고 말하기 어렵다.

시각에 따라 선호하는 작품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번 선정에 대해서도 아쉬움 내지 불만을 표시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

10대 시인이 아니면 어떠랴.이 가을,내 마음의 시 한 편쯤 외우노라면 팍팍한 세월을 견디기가 한결 수월하지 않을까.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