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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칼럼] 조선통신사 조엄과 김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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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朴星來 <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과학사 >

    조선 영조 때의 문신(文臣) 조엄(1719∼1777)이 남긴 '오사카성'(大阪城)이란 시가 있다.

    '번화대판성 예의조선국 수빙백년신 부동천리속(繁華大阪城/禮義朝鮮國/雖聘百年信/不同千里俗:번화롭기는 대판시지만/예의 밝기는 조선국일세/백년을 사귀었건만/천리 거리에 이리 풍속은 다르네).' 그가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갔던 1764년 1월 오사카에서 지은 작품이다.

    일본의 놀라운 번영을 처음으로 목격한 조선의 선비가 그 놀라움을 마음속에 감춘 채,아무리 일본이 경제대국이라지만,우리나라야말로 보다 값진 동방예의지국이라 내세우고 있다.

    다음 주 열리는 '동아시아의 서양과학 도입 비교'를 주제로 한 국제회의(16∼18일,서울대 규장각)에서 발표할 논문을 준비하면서,나는 조엄의 이런 태도가 바로 조선왕국을 후진성에 묶어두었다는 안타까움을 더욱 절실하게 느꼈다.

    서양 나라들이 먼저 개발한 과학기술을 앞세워 동양으로 진출한 16세기 이후,동아시아 3국은 공식적으로는 비슷하게 쇄국(鎖國) 상태였다.

    하지만 잘 비교해 보면 세 나라를 잠근 자물쇠는 모양도 달랐고,그 잠금 정도도 서로 달랐다.

    특히 나라 문을 잠그기 전에 이미 많은 중국인들이나 일본인들은 외국에 나가 있었다.

    중국인들은 이미 15세기에 무리지어 동남아 여러 곳에 정착했다.

    몽골족의 원(元)이 망하고 한족(漢族)의 명(明) 나라가 시작되면서 일어난 일이다.

    환관(宦官) 정화(鄭和)는 1405년부터 1433년 사이에 7차의 원정대를 이끌고 아프리카까지 다녀왔는데,그의 첫 항해는 배 317척에 2만7000명이 일행이었다.

    이들 상당수는 바로 이슬람교를 믿는 중국인들이나 아랍인들이었다.

    정화가 바로 중국에 귀화했던 아랍인이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바로 이들이 동남아 여러 곳에 정착해 지금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에 이슬람교도나 중국교포사회가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로서는 몽골족 정부보다 종교나 민족적 차별이 더 심했던 한족의 명 나라를 벗어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인 역시 그 직후 거의 비슷한 수준의 재외교포사회를 만들어 놓았다.

    일본 역사학자들 추산으로는 약 10만명의 동남아 일본 교포가 이미 도쿠가와(德川) 막부 초기에 형성되었는데,많은 사무라이들이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패배한 후 일본을 떠났고,또 도쿠가와 막부 초기의 기독교 박해를 피해 일본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런 일본인 한 사람은 태국의 아유타야에서 일본인 교포사회의 대표로 출세해 태국의 왕위 계승 투쟁에 말려든 일도 있을 지경이다.

    당연히 무늬만은 세 나라가 다 쇄국이었지만,동남아의 장사꾼들은 모국 중국과 일본을 드나들며 교역을 계속했다.

    예나 이제나 돈 되는 곳이라면 사람은 몰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조선의 경우는 그렇게 동남아에 진출한 교포란 전혀 없었다.

    우리 역사 기록을 보면 필리핀,베트남,그리고 오키나와에 표류했다가 돌아온 경우가 몇 있을 뿐이다.

    삼국시대 중국 땅에 있었던 '신라방'에 견줄 만한 '고려방'이나 '조선방'은 동남아 어디에도 없었다.

    재외교포와의 상거래가 활발하게 펼쳐지면서 중국인이나 일본인들은 세상 물정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중국과 일본에는 해외에 대한 정보가 조금씩 퍼졌지만,조선에는 그런 소식이 전혀 깜깜이었다.

    게다가 16세기부터는 서양 선교사들이 두 나라에 직접 들어와 활동하기 시작했고,그와 함께 상인들도 묻어 들어와 거래를 텄다.

    특히 일본은 서쪽 항구에 처음에는 포르투갈,그리고 이어서는 네덜란드 장사꾼들만을 받아들였다.

    요즘 한국인들의 관광지가 되어 있는 규슈(九州) 지방의 하우스텐보스는 바로 나가사키(長崎)에 있었던 네덜란드무역센터를 관광자원화한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는 왜 그리도 해외진출이 적었던 것일까?'하는 한탄이 앞선다.

    "번화롭기는 서울시지만/주체(主體)롭기는 조선이로세." 부디 그러지 말기를 빌어본다.

    유난스런 고립 속에 조선왕국이 당했던 비극을 북조선이 반복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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