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문화도시 바이마르,독일의 작은 파리 라이프치히,자연과학의 메카 괴팅겐,독일연방공화국의 수도 베를린,남부 독일의 문화 중심지 렌바흐하우스….

서강대 독어독문학 교수인 이민수씨가 쓴 '낭만과 전설이 숨쉬는 독일 기행'을 보면 독일의 각 도시를 묘사하는 글귀가 등장한다. 그의 설명처럼 독일은 나라 전체에 주요 기능들이 고루 분산돼 있다. 마치 온 몸에 근육이 고루 발달돼 잘 빠진 수영선수의 몸매와 같다고 이 교수는 설명한다. 독일에서는 전체 인구의 4분의 1이 모여 사는 서울과 같은 '거대' 중심 도시는 찾아볼 수 없다.

"경제,교육,생활 심지어 문화까지 서울이라는 한 도시에 집중돼 있어요. 물론 머리만 발달한 가분수 같다는 느낌도 들지만,연구 대상인 것만은 분명하죠." 독일에서 온 요하네스 크리스토퍼 헤데러(24.뮌스터대 지리학과 3학년)는 "모든 기능이 집중된 메트로폴리탄인 서울은 독일과는 전혀 다른 별천지 같다"고 놀라움을 표시했다.

헤데러는 이런 거대 도시 서울의 도시 계획 관련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지난 8월6일부터 6주간 서울시에서 도시계획 관련 분야 프락티쿰(실습)을 했다. 일종의 무급 인턴십인 셈이다. 이번 실습은 서울시가 홈페이지에 '시장에게 바란다'에서 접수한 건의사항을 받아들여 추진했다.헤데러는 6주 동안 서울시 도시계획과에서 근무하며 서울시 도시계획과 관련한 다양한 체험을 했다. 기자가 인터뷰를 위해 방문했던 지난 15일에도 그는 서울시 도시계획과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행정 업무 전반을 검토하고 있었다.

지난 실습기간 중 그가 겪은 최고의 경험은 분당과 일산을 직접 다녀온 것이다. 헤데러는 아파트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분당 아파트 단지를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했다.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아파트는 처음 봤어요. 특히 분당 정자동은 세련된 도시 디자인이 매력적이었지요." 그는 이런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모습을 담기 위해 미리 준비해간 카메라 셔터를 쉴새 없이 눌렀다고 했다. 그가 보여준 사진들에는 서울에 사는 사람들도 미처 느끼지 못했던 아파트의 '아름다움'이 묻어났다.

그는 서울시가 추진 중인 도심 재창조사업,뉴타운사업,상암 DMC 등 도시계획 관련 주요 현장도 잇따라 방문,서울 지역을 훑고 다녔다.

"독일 사람들은 주로 단독 주택에 살아요. 아파트 단지도 있지만 서울과 같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는 드물죠. 저도 서울에서 아파트에 한번 살아보고 싶어요." 그는 "한국의 아파트는 작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데다 호텔처럼 시설이 편리한 게 장점"이라고 평가했다. 도시계획과 관계자는 "한국인들은 자신들이 사는 도시를 지나치게 폄하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헤데러는 외국인의 시각에서 색다르게 서울을 바라본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가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독일에서 만난 친구 박찬용씨(35) 덕분이다. 독일 뮌스터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박씨는 '탠덤'을 통해 헤데러를 만났다. 탠덤은 원래 앞뒤를 끄는 마차라는 뜻으로 서로 각자의 언어를 알려주며 돕는 대학생 단체를 말한다. 헤데러는 박씨를 만나 한글을 배우면서 한국에 호감을 느끼게 됐다고 했다.

"독일에서도 일주일에 한 시간 정도는 한글 공부를 했어요. 그래서 한국에 왔을 때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었죠."

헤데러는 현재 박씨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고 있다. 박씨의 부모님과 동생이 그를 친 가족처럼 돌봐주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한국음식 냄새가 나요. 맛있는 냄새에 저절로 잠을 깨죠." 그는 날씨가 후텁지근해 처음엔 고생을 했지만 음식도 잘 맞고 생활하는 데 큰 불편이 없었다고 말했다.

"하루는 시청 직원 중 한 명이 향수병 같은 게 생기지 않느냐고 물었어요. 솔직히 한국에 있는 동안 향수병에 걸릴 틈이 없었어요. 시청 직원들도 항상 영어로 대화하면서 진행 과정을 알려줬고,홈스테이하는 가족들도 편하게 해줬으니까요."

헤데러는 실습을 마친 뒤 다음 달 초 독일로 돌아갈 예정이다. 하지만 그는 졸업 후 다시 한국으로 오고 싶다고 말했다. 도시계획에 관심이 많은 만큼 건축 관련 분야에 종사하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어릴 적부터 도시계획에 관심이 남달랐던 그는 "도시를 걸으면 그 나라의 정치,경제,문화가 한눈에 보인다"고 설명했다. 현재 전공하는 지리학도 도시 건축의 이유를 파악하는 것이 주된 공부 내용이다. 왜 공장이 여기 있는지 공부하는 것이 '경제 지리학'이라면 남북의 경계가 되는 DMZ(비무장지대)는 '정치 지리학'이 된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 있으면서 "한국인들은 왜 아파트에 살기를 원할까"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고 말했다. "한국은 국토가 좁은데 짧은 역사 동안 급하게 성장했어요. 그러다 보니 선택과 집중을 하게 된 거죠. 서울을 보면 한국이 보입니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기 전 남은 2주 동안 혼자 서울을 돌아다니며 한국 도시의 멋을 만끽할 계획이다. 특히 경복궁,창경궁 등 옛 왕궁을 찾아 '옛것과 새것'의 조화를 느끼는 기회를 갖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글=성선화 기자/사진=김병언 기자 d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