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수입업체들이 마케팅을 위해 공을 많이 들이는 곳 중의 하나가 골프장 클럽하우스다.

여론 주도층이 많이 찾는 곳이라 홍보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안양 베네스트GC와 곤지암CC는 특히 중요한 '공략' 대상이다.

각각 삼성과 LG그룹의 최고경영자(CEO) 및 임원들이 자주 찾는 곳인 데다 와인 문화가 정착된 몇 안 되는 곳이라는 점이 주목받고 있다.

안양 베네스트GC의 클럽하우스에선 연간 6000여병의 와인을 판매해 국내 골프장 중 최다(最多)를 기록하고 있고,곤지암CC는 바로 옆에 내년 말 들어설 리조트에 9만병가량을 저장할 수 있는 국내 최대 카브(동굴 형태로 만들어진 와인 저장시설)를 준비 중이다.



◆그늘집에서도 화이트 와인을…

2003년 3월부터 와인 판매를 시작한 안양 베네스트GC는 와인 문화를 이끌고 있는 '본산(本山)'답게 클럽하우스에서 와인을 마시는 골퍼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서홍진 식음팀장은 "4∼6월,9∼11월 성수기엔 한 달 평균 600병가량이 나간다"며 "클럽하우스 별실을 이용하는 고객은 대부분 와인을 마시고 홀에서도 40%가량은 와인을 찾는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주류 부문 매출에서 와인은 맥주와 함께 증가세를 보인 반면 와인의 '대체재'인 위스키는 판매량이 뒷걸음질했다.

생맥주가 많이 팔리는 그늘집에도 와인이 비치돼 있다.

서 팀장은 "손님들에게 열이 난 상태에서 맥주를 마시면 몸이 더 뜨거워지니 시원하면서도 새콤한 맛의 소비뇽 블랑(화이트 와인에 쓰이는 포도 품종)을 드셔보라고 권했더니 이젠 '포레스트 힐스테이트' '로손 드라이힐스' 등 '그늘집용 화이트 와인'을 찾는 사람들이 꽤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곤지암CC는 올 상반기 1000병가량의 와인을 판매,안양 베네스트GC에 비하면 적은 편이지만 점차 와인을 찾는 골퍼들이 늘고 있다.

곤지암CC를 운영하는 리조트업체 서브원 관계자는 "와인에 관심이 많은 20명을 회원으로 조직해 한 달에 한 번씩 와인 테이스팅 및 골프에 관한 정보를 교환하는 클럽을 운영 중"이라고 말했다.

◆10만원 안팎 신대륙 와인이 인기

그렇다면 삼성과 LG그룹의 임원들은 라운딩 후 주로 어떤 와인을 마실까.

안양 베네스트GC와 곤지암CC에서 올해(8월 누계) 판매한 와인 중 매출 상위 5위를 조사한 결과 10만원 안팎의 칠레,미국 등 신대륙 와인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안양 베네스트GC에선 와인 스펙테이터(미국 와인 전문 잡지)가 '2006년 100대 와인' 중 3위로 꼽은 칠레산 '돈 뫼처 2004'(13만1000원,클럽하우스 판매가)가 194병 팔려 1위를 차지했다.

'몬테스 알파 카베르네 소비뇽(이하 C/S) 2004'(6만2000원) '양가라 2004'(12만원) '이엔제이 갤로 스테파니 C/S 1998'(8만6000원) '테뤼뇨 C/S 2004'(8만7000원) 등이 뒤를 이었다.

곤지암CC에서도 칠레산 '몬테스 알파 C/S 2004'(6만5000원)가 166병으로 1위에 올랐다.

몬테스 시리즈의 최고등급인 '몬테스 알파M'은 노무현 대통령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때 공식 만찬주로 내놓은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남용 LG전자 부회장이 곤지암CC에서 라운딩 후 건배주로 주문하기도 했다.

이 밖에 '뷰마넨 말벡 2005'(9만5000원) '조셉 펄프 C/S 2004'(19만5000원) '뷰마넨 리저브 2004'(6만5000원),'테라마터 쉬라즈 2004'(8만5000원)가 2∼5위를 차지했다.

곤지암CC 관계자는 "CEO 및 임원들은 해외 경험이 많아서인지 한국의 와인가격에 거품이 많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가격에 의외로 민감하다"며 "이 때문에 추석 연휴를 보내고 새로 선보일 와인 메뉴의 가격을 평균 10%가량 낮추기로 했다"고 말했다.

◆삼성·LG그룹 '와인 마케팅' 활발

그룹 전체적으로 와인 문화가 뿌리내리고 있는 덕분에 삼성과 LG그룹은 유독 와인과 인연이 깊은 기업으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보르도'라는 이름 하나로 세계 고가 TV 시장을 제패했고,LG전자도 지난 5월 '와인 폰'을 선보이며 와인을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처럼 와인과 깊은 연을 맺은 데는 무엇보다 그룹 총수가 와인 애호가라는 점이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올초 전경련 회장단 만찬에서 '샤토 라투르 1982'를 내놓아 주목을 받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도 골프장을 찾을 때 '샤토 마고' 등 프랑스 와인을 자주 찾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65' 등 칠레 와인 마니아로 알려진 허태학 삼성석유화학 사장 등 전문경영인들도 대부분 와인 문화에 익숙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국내 재계 총수 중 손꼽히는 와인 전문가로 통하는 구본무 회장의 LG그룹은 곤지암CC에 인접한 곤지암 리조트에 카브(와인 저장 창고)를 짓고 있을 정도로 와인 문화 전파에 신경을 쓰고 있다.

곤지암에 건설 중인 카브는 두 개의 인공 동굴을 만들고 이를 'ㄷ'자로 연결하는 방식으로 설계됐는데 총 저장 용량이 9만병에 달할 정도의 규모를 자랑한다.

서브원 관계자는 "골프 회원들 상당수가 이미 리조트 회원으로 가입했다"며 "카브 안에는 레스토랑과 와인 시음시설도 들어서며,회원들을 위한 개인 저장시설을 마련해 줄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CEO 중에선 심재혁 레드캡투어 사장과 신재철 LG CNS 사장이 와인에 조예가 깊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