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 등 몇몇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슬로디자인' 운동이 눈길을 끈다.

의식주 문제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자는 운동인데,환경친화적인 삶을 목표로 삼는다.

자연이 파괴된 곳에 새 집이 지어지고,유전자가 조작된 식품이 밥상에 오르는 상황을 개선하지 않고는 진정한 행복을 맛볼 수 없다는 것이다.

슬로디자인은 속도경쟁으로 우리의 생활이 편리해지고 풍요로워지기는 했으나,행복의 원천인 마음의 여유는 실종돼 버렸다는 아쉬움이 공감대를 형성해 가고 있다.

이 운동은 지금 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는 '슬로시티(Slow City)'와 맥을 같이한다.

슬로시티는 1999년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오르비에토에서 시작됐다.

패스트푸드에 대항해서 만들어진 슬로푸드운동을 시장에 당선된 사투르니니씨가 지역 전체로 확대한 것이다.

그는 우선적으로 자판기와 냉동식품을 몰아내고,전통 수공업과 조리법을 장려하고,자전거 길을 만들고,심지어는 광장의 네온사인도 철거해 버렸다.

전통과 자연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마을 길도 이 곳에서 나는 흙을 구워 깔았다.

호텔이 필요하면 성을 개조해 꾸몄고,주차장은 모두 지하로 옮겼다.

아날로그 생활로 회귀하는 듯한 시장의 처사에 반발하던 주민들도 관광객이 늘고 자신들의 생활이 여유로워지자,떠나기는커녕 오히려 고향을 등졌던 젊은이들을 불러들이고 있다고 있다.

슬로시티가 호응을 얻으면서 국제연맹이 만들어졌고,유럽을 중심으로 90여개 도시가 가입돼 있다.

슬로시티의 인증을 받기 위해 전남 완도군,담양군,신안군,장흥군이 도전장을 냈다.

현재 실사가 진행중인데,이들 지역은 경관이 훼손되지 않은데다 전통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어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다.

화려한 관광도시가 아닌 인간답게 사는 마을로 탈바꿈하려는 지자체의 노력이 돋보인다.

슬로시티에서 맛보는 '라 돌체 비타(달콤한 인생)'를 어쩌면 우리네 마을에서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