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철금속이나 에너지 농산물 등 원자재를 제품과 관련한 원료로 사용하면서 이를 대규모로 취급하는 회사들은 원자재 가격 움직임을 이용해 추가이익을 창출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어차피 필요한 제품이니 미리 사놓아도 큰 문제는 없는 것이고 보면 가격이 오르기 전에 미리 원자재를 대량 매수해 놓았다가 가격이 이상 급등을 보이면 일부를 팔아 추가이익을 챙길 수도 있다.

선박을 이용해 비즈니스하는 해운회사들이 배 자체를 사고 팔면서 이익을 창출하는 것과 비슷한 구조다.

그런데 거래대상에 대한 선물거래가 이뤄지는 이런 거래를 대규모로 아주 효과적(?)으로 시행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시장스퀴즈'라는 것이다.

이는 미래의 일정시점에서 거래할 가격을 지금 정해놓는 선물시장이나 물건과 돈을 지금 즉시 교환하는 현물시장을 모두 이용해 이익을 챙기는 방법인데 비결은 간단하다.

두 시장에서 모두 대규모 매수를 하면 두 시장에서 동시에 가격이 오르면서 엄청난 가격상승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일종의 매점매석을 하되 선물과 현물 두 시장에서 동시에 매점매석을 하는 것이다.

문제는 어느 특정 주체가 현물을 매수하는 동시에 선물까지 매수할 경우 금방 표시가 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한때 은(silver) 선물시장을 이용한 스퀴즈를 하면서 현물과 선물매수포지션을 대량으로 구축,은 가격을 천정부지로 치솟게 한 헌트 형제사건의 경우 두 시장에서 매점매석한 것이 발각되자 감독당국이 선물매수 포지션의 강제 청산 명령을 내려 은 가격을 정상화시킨 일이 있었다.

이들의 스퀴즈는 감독당국의 개입으로 실패한 셈이다.

한때 대량의 구리거래로 이름을 날린 일본의 한 업체는 일종의 시장스퀴즈를 시도하면서 선물시장에서 매수는 직접 하면서 뒤로 몰래 중국 업체들을 동원,구리현물을 매집하도록 함으로써 구리 가격을 폭등시킨 적이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처럼 선물과 현물시장에서 각각 역할을 분담해 구리가격을 올렸다는 정보가 일부 헤지펀드에 새어나간 것이다.

이 정보를 접한 헤지펀드들은 구리선물시장에서 대량으로 매도 포지션을 취하기 이르렀고,결국 구리선물가격과 함께 현물가격이 하락하자 공모를 했던 중국 업체들이 견디다 못해 구리를 팔아치우기 시작했다.

결국 구리가격이 정상화되면서 스퀴즈를 시도한 일본업체는 엄청난 손실을 보았고 담당자는 문책당한 뒤 회사를 떠났다.

헤지펀드들이 구리가격을 정상화시키는 데 공헌하면서 큰 수익을 올린 것이다.

무리한 조작이 시장 스스로의 규율에 의해 실패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헤지펀드라는 존재를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는 부분도 확인해 볼 수 있는 예이다.

최근에 와서 헤지펀드라는 이름은 여기저기서 많이 등장한다.

헤지펀드는 100인 이하 고객의 자금을 사적으로 모아 운용하는 것이다.

부자들의 곗돈 같은 펀드라고 보면 된다.

헤지펀드는 크게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투자자 숫자가 적기 때문에 각종 공시와 보고의무를 면제받는다.

또한 헤지펀드 매니저는 대부분 자신의 돈을 펀드에 투입해 고객 돈과 같이 운용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엄청난 성과급이 존재한다.

고객이 100을 투자했는데 150이 돼 50을 벌었다면 이 중 20% 정도를 성과급으로 지불해야 한다.

결국 헤지펀드 매니저가 남의 돈을 잘 운용하면 고객도 수익을 올리지만 본인도 부자가 되는 것이다.

최근 높은 수익률을 자랑하는 헤지펀드인 르네상스 테크놀로지는 성과급을 40% 이상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 펀드의 작년도 매니저 연봉은 17억달러였다) 이들은 공적으로 모집된 뮤추얼펀드나 연기금에 비해 상대적으로 발 빠르고 순발력 있는 투자를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이런 구조는 특이한 투자대상이나 맞춤형 투자에 아주 좋다.

헤지펀드의 헤지(hedge)라는 단어는 역설적이기는 하나 위험을 회피한다는 뜻이다.

물론 매우 신중한 투자행태를 보이는 헤지펀드도 많다.

하지만 이들 중에는 고수익 고위험을 추구하면서 금융시장의 리스크를 처리하는 역할을 하는 펀드도 많다.

이들 중 일부는 펀드의 생태계에서 하이에나 같은 존재다.

하이에나가 마지막으로 죽은 짐승의 고기를 처리하면서 초원은 깨끗해진다.

초원에 사슴과 사자도 살고 하이에나도 살듯이 펀드의 생태계도 다양하게 형성돼야 한다.

펀드 하나하나가 각자의 전문성을 가지면서 활동할 때 시장 전체에서는 분산과 다양성이 나타날 여지가 큰 것이다.

이제 자본시장통합법 시대를 맞아 우리나라 펀드의 생태계에도 공모펀드 연기금펀드 사모펀드 헤지펀드 바이아웃펀드 벌처펀드 등 다양한 주체가 설립돼 활동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 각각의 영역에서 전문적으로 활동할 때 우리 금융시장은 더욱 발전하고 업그레이드될 수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 초원처럼 다양한 펀드가 설립돼 제 역할을 하는 펀드의 생태계를 꿈꾸어본다.

/서울시립대 교수 chyun@uo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