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의 날갯짓(Voo de Galinha).' 브라질 지식인들은 이 나라의 경제상황을 이렇게 비유한다. 닭은 아무리 날개를 퍼덕거려도 하늘로 날아오르지 못한다. 이내 땅으로 떨어진다. 브라질 경제가 꼭 그런 모습이라는 것이다. 기세좋게 성장가도를 질주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드디어 도약을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올 만하면 고꾸라졌다. 영어권 전문가들은 '롤러코스터 경제' '영원한 잠재력의 나라'라고 비아냥대기도 한다. 룰라 브라질 대통령은 이런 비유가 가슴에 사무쳤던 모양이다. 최근 대학 관계자들을 접견한 자리에서 브라질 경제가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성장궤도에 들어섰다며" 더 이상 닭의 날갯짓을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원한 잠재력의 나라' 비아냥

과연 그럴까.

브라질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국적을 가릴 것 없이 "아직 장담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무엇이 발목을 잡는 걸까.

높은 세제와 낙후된 인프라,복잡한 행정 규제와 관료주의 등을 꼽는다.

이른바 '브라질 코스트(사업에 들어가는 비용)'다.

이걸 바로잡지 않는 한 브라질 경제의 환골탈태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브라질 코스트'의 으뜸으로 손꼽히는 것은 누더기 세제다.

브라질 유력 일간지인 에스타두 데 상파울루는 최근 이 나라의 세제가 얼마나 복잡하고 세율이 높은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기사를 실었다.

호주 커먼웰스은행의 자료를 인용,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 아이템으로 떠오른 미국 애플사의 iPod(아이팟) 국제 가격을 비교했다.

미국에서 149달러,같은 BRICs의 일원인 인도에서는 222.27달러에 팔리는 아이팟 나노 최신 모델 가격이 브라질에서는 327.71달러에 팔린다는 것.

이유는 세금이다.

수입세,상품유통세,사회보장세,금융거래세,소득세 등 온갖 명목의 세금이 따라붙어 최종 판매금액의 최소 50% 이상을 세금으로 뜯어간다.

그러다 보니 LCD-TV,비디오 게임 등 구매 수요가 높은 품목은 원산지 판매 가격보다 2~3배 이상 비싸게 팔린다.

연방정부와 주(州)정부 간에 얽히고 설킨 세금 부과 시스템은 기업들을 더욱 헷갈리게 만든다.

상파울루주에서 라이신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CJ 브라질 법인의 권오석 CFO(최고재무책임자)는 "부가가치세만 해도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제각각 부과하고 있는 데다,정산을 통해 환급받으려면 48단계의 기간으로 나눠 받아야 한다"며 "세제가 하도 복잡해 다른 나라에서 한 명이면 될 세무 처리 인력이 브라질에서는 5~6명이 필요할 정도"라고 말했다.

엉망 투성이 인프라는 '62번째 세금'

열악한 인프라는 더 큰 골칫거리다.

철도 공항 항만 도로 등 웬만한 사회간접자본 시설은 낙후돼 있을 뿐 아니라 절대 수요에 크게 못 미친다.

삼성전자 브라질 법인의 임중호 부장은 "아마존 인근 마나우스 공장에서 생산한 가전제품을 상파울루까지 운송할 철도가 갖춰져 있지 않다"며 "도로와 선박 등 몇 차례 수송 수단을 바꿔가며 운송하다 보니 최소 2주일이 걸린다"고 말했다.

상파울루 산업연맹(CIESP)의 마우리세 코스틴 부회장은 "지난달 19일 상파울루의 국내선 전용 콩고냐스 공항에서 일어난 여객기 착륙 실패 대참사는 이 나라의 공항 등 기본 인프라가 얼마나 엉망인지를 보여주는 단적이고도 부끄러운 사례"라고 말했다.

주(駐)브라질 중국상공회의소 당카이톈 회장의 말은 보다 직설적이다.

"브라질의 세제가 하도 복잡해 전부 조사해봤더니 61가지에 이르더라"며 말문을 연 그는 "더 골치 아픈 62번째 세금이 기업들을 맥빠지게 만드는 엉망 투성이의 인프라"라고 쏘아붙였다.

여기에다 만성적인 관료주의까지 가세한다.

세계은행 산하 국제금융공사(IFC)에 따르면 브라질에서는 계약을 집행하는 데 25개 개별 절차를 밟아야 하며,평균 566일이 소요된다.

창업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152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25일)보다 여섯 배 이상 더 걸린다.

IFC가 175개국을 대상으로 '기업하기 좋은 환경' 순위를 매긴 결과 브라질의 순위는 121위였다.

'찍어누르기' 가격 통제 에너지난 자초

아르헨티나도 기업하기 어려운 환경에 관한 한 브라질과 쌍벽을 이룬다.

부가세를 환급받는 데 최장 1년이 걸리는 난마처럼 얽힌 세제에다 해고가 사실상 불가능한 노동시장 등은 이 나라가 브라질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외환위기를 맞고,살인적 인플레를 겪는 등 닮은 꼴의 갈지자(之) 경기 순환을 보여온 이유를 설명해준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매긴 반(反)부패지수는 2.5로 175개국 중 108위를 기록,브라질(3.9로 59위)을 훨씬 웃돌았다.

게다가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정부가 외환위기 후유증 극복을 겨냥,수출 경쟁력 확보를 위한 고(高)환율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물가가 급등하는 곤욕을 치르는 중이다.

키르치네르 정부는 물가 불안을 거시경제적 처방을 통해 해결하지 않고 기업인들을 직접 불러내 가격 동결을 약속받는 '찍어누르기' 방식의 미봉책으로 일관,곳곳에서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최근 이 나라가 천연가스와 전기 등 기초 에너지 공급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정부의 가격 통제로 이익을 낼 수 없게 된 기업들이 적극적인 생산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 주요 남미 국가들이 이 같은 함정에 빠진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남미를 지배하고 있는 좌파 정권들이 '큰 정부'를 지향하다 보니 과다 규제와 관료주의의 덫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며,재정 집행 우선 순위를 분배와 복지에 둠에 따라 인프라 확충이 더딜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JETRO 부에노스아이레스 사무소의 시다라 다카히로 소장은 "남미 국가들의 풍부한 자원과 시장 규모를 보고 각국 기업이 앞다퉈 진출하고 있지만 충분한 사전준비와 검토없이 뛰어들었다가는 낭패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상파울루·부에노스아이레스=글·사진 이학영 생활경제부장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