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석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요즘 대한항공 임직원을 대상으로 '집단소송 강의'를 하느라 바쁘다.

대한항공이 화물운임 담합 혐의로 미국에서 3억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은 데 이어 최근엔 항공료 담합 혐의로 미국 탑승객들로부터 집단소송까지 당하면서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 시급해졌기 때문이다. 안 변호사는 "집단소송에 한 번 걸리면 회사가 휘청거릴 수도 있어 소송 관련 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금호아시아나 변호사들도 눈코 뜰 새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 회사를 대리하는 한국과 미국 변호사들은 미국 현지에서 대한항공과 비슷한 이유로 치열한 법정싸움을 벌이고 있다.

얼마 전에는 삼성전자가 반도체D램 가격담합과 관련한 소비자 소송으로 혼쭐이 나기도 했다. 또 나스닥 상장업체인 게임업체 그라비티와 리디스테크놀로지도 상장과정 등에서 주주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한 혐의로 집단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현대자동차도 2건의 집단소송 경험이 있다.

한국 기업에 미국발 집단소송 비상이 걸렸다. 한국에서 집단소송 경험이 없는 한국 기업을 상대로 한 미국 소비자들의 집단소송이 줄을 잇고 있다. 아예 한국 기업만을 노리고 몇몇 소비자들을 골라 무조건 소송을 걸고 보는 미국 변호사까지 생겨나고 있다. 미국 집단소송을 경험한 한국 변호사들은 앞으로 대한항공 같은 사례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변호사들은 미국 소비자에게 소송을 당하면 패소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한다. 배심원들이 대부분 소비자를 옹호하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심리를 앞두고 디스커버리(증거개시)에 걸리면 한국 기업들은 진을 뺀다. 디스커버리 제도는 원고가 피고회사의 모든 증거자료를 보여줄 것을 요구하는 소송권리 중 하나다. 피고회사는 최종 판결결과와 상관없이 많은 인력과 자원을 투입해 자료를 만들어내야 한다. 직원들은 자료를 만드느라 다른 일을 못한다. 집단소송을 당해본 삼성 현대차 등 굴지의 한국 기업들은 한마디로 무섭다는 반응이다.

한국 기업들은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최종 판결까지 가지 않고 중도에 합의금을 지불하거나 리콜제도를 이용한다. 원고에게 애프터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할인쿠폰을 제공하는 방법도 쓴다. 현지에 아예 고문변호사를 두기도 하고 소송 초기부터 한국과 미국 사정에 두루 밝은 변호사를 투입해 피해를 줄이려 한다. 미국 로펌에만 맡겨놔서는 자칫 휘둘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출신의 이석준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차원에서 회원국들이 공정거래 위반사건에 대해 집단소송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며 "한국 기업들이 이 같은 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정교한 집단소송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집단소송을 당할만한 거리를 사전에 차단하는 현지소비자 위주의 영업이 절실하다는 것.

한국에서는 2005년 분식회계 등 증권 관련 집단소송제가 시행 중이지만 집단소송이 발생한 적은 없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