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 潤 基 < 패션스타일리스트 intrend07@yahoo.co.kr >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감정 중에서 설렘만큼 좋은 것은 없는 것 같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어떤 장소에 처음 가봤을 때,어떤 물건을 갖게 되었을 때 심장의 움직임이 기분 좋게 가빠지는 설렘은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나이를 먹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느낄 때가 많다.

하지만 살아오면서 경험한 것들 때문에 설렘이란 감정을 자주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속상하게 한다.

마흔 가까운 나이의 남자가 설렘이란 표현을 쓴다는 게 남자답지 못할 수도 있기에 나는 설레는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 보이기보다는 마음 속에서 즐기는 경우가 많다.

되도록 작은 것이라도 설렘이란 감정을 가지려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거는 편이다.

예를 들어 처음 작업하는 사진가와의 촬영에서 어떤 멋진 결과물이 나올까 하는 기대만큼 기분 좋은 떨림은 없을 것이다.

이것은 촬영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일에서 그렇다.

새 브랜드 론칭파티를 맡아 이벤트를 기획하고 진행할 때도,한국에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를 다양한 마케팅을 통해 유명 브랜드로 띄웠을 때도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물론 이 설렘이라는 감정은 일에서보다는 개인적인 감정에서 더 크게 와닿는 것이 사실이다.

일에 대한 스트레스로 치일 때 반가운 친구 이름이 뜨는 휴대폰을 보면서도 기분이 설레는 날이 있고,오랜만에 본가로 향하며 오늘은 어머니가 무슨 음식을 차려 놓으셨을까를 기대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쉽게도 최근 몇 년간은 느껴보지 못했지만,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아마도 설렘이라는 감정의 절정일 것이다.

사랑할 때는 참으로 많은 것에서 설렘을 얻을 수 있다.

만나는 것,전화를 기다리는 것,기념일이 다가오는 것 등.바쁘다는 핑계와 임자를 못 만났다는 핑계로 나는 화려한 솔로 생활을 지속 중이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설레는 첫 만남의 날들을 회상해보면 일을 잠시 제쳐두고 사랑을 찾아 나서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누구나 사랑하는 마음으로 달콤한 설렘을 맛볼 수 있는 게 가장 즐겁겠지만,본인 마음의 위안을 삼기 위해 나처럼 작은 일에도 기대하고 상상하고 설렘을 유도하는 자기 최면에 빠지는 것도 인생을 즐기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요즘 나는 가을·겨울 컬렉션으로 쇼윈도를 바꿔가는 브랜드 숍들을 지나치면서도 묘한 설렘을 느낀다.

이번 시즌의 트렌드를 점쳐보고 저 옷들을 어떻게 '정윤기식'으로 풀어갈지를 상상하다 보면 첫사랑처럼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이것도 어쩔 수 없는 직업병이겠지만,즐기면서 일할 수 있는 행복은 어떤 설렘보다 값진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