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순 < 송파구청장 youngk7@chol.com >

몇 분 단위로 행사를 소화해내야 하는 구청장직을 수행했던 지난 1년,그동안 바쁘다는 이유로 미뤄 두었던,그래서 늘 마음 한구석이 천근만근 무거웠던 일들을 이번 휴가를 통해 훌훌 털어버리고 싶어 7일간의 여름휴가를 몽땅 가족을 위해 쓰기로 했다. 시집간 딸과 친정 식구들까지 모두 13명의 대가족이 우리집에서 함께 휴가를 보낸다는 계획이었다.

정작 내 휴가가 시작되기 2일 전 사위 휴가에 맞춰 큰딸네 네 식구가 우리 집으로 들이닥쳤다. 이내 집안은 엉망이 되고 애들은 수시로 보챘지만 밤마다 손녀딸 유나가 그토록 더운데도 내 곁으로 와서 꼭 껴안고 자 주었다. 얼마만인가,이렇게 귀한 생명을 가슴에 품고 자는 것이!

하루 세 끼 꼬박 따뜻한 밥을 해 먹이고 싶어 생선 굽고 나물 무치고 과일 깎아 대느라 얼굴은 붓고 발도 부었지만,내 아이들 입에 먹을 것 넣어 주는 일은 어찌나 감동스럽고 행복했던지. 하루만 더 있었으면 아마도 지쳐 쓰러졌을지도 모르는 그런 절묘한 시점에 딸애는 시어머니께서 아이들이 보고 싶어 눈이 다 나오겠다는 농을 문자로 보내오셨다며 서둘러 떠났다.

'손자 녀석들 올 때 기쁘고,갈 때는 더 기쁘다'는 말이 있다더니 한편 맞는 말인 것 같다. 그러나 또 한편 어림없는 말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휑하니 떠난 후 나는 함께 누웠던 침대며 앙증맞은 손으로 칫솔질하던 세면대 앞,정신없이 뛰어다니던 거실을 서성이고 또 서성거렸다. 왜 이리 허전한지,왜 이리 아쉬운지….

딸네가 떠나자마자 전화로 재촉해 어머니와 친정 조카들이 우리 집에 모였다. 조카들을 등 떠밀어 롯데월드로 보내 놓고 모처럼 모녀가 마주앉아 식사를 했다. 어머니는 쪄서 양념에 무친 가지나물을 "달다,음 정말 달아" 하시면서 맛있게 드셨다. 언제였던가! 내손으로 어머니 밥 위에 반찬을 얹어드린 것이.

아니 그런 적이 있기는 있었던가.

주름 가득한 어머니 얼굴을 똑바로 뵙기가 죄송해서 오물오물 가지나물을 드시는 어머니 입만 바라봤다. 손녀딸과 그랬던 것처럼 친정어머니와도 두 손을 꼭 잡고 함께 잤다. 내 손에는 고물고물 앙증맞은 손녀딸의 작은 손 대신 꺼칠하고 앙상하게 마른 내 어머니의 손이 잡혀 있었다.

용서하세요 어머니! 겨울이면 이 못난 딸 발 시릴까 봐 이불 속에 운동화를 넣어 덥혀 주시던 당신이셨는데…. 아! 나는 얼마나 오래 이 앙상한 손을 잡을 수 있을까.

천천히 아주 천천히 시간이 흐르기만을….

그리하여 내 삶의 의미인 앙증맞은 손녀딸의 손과 앙상한 어머니의 손의 무게를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