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은 6일 "멕시코의 통신 재벌 카를로스 슬림 회장(67)이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을 제치고 세계 최고 부호의 반열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멕시코의 한 금융정보 회사가 슬림의 '1위 등극' 소식을 처음 전한 이후 한 달 만에 매년 세계 부자들의 순위를 매기는 포천이 1위 타이틀을 공식 인정한 셈이다.

카를로스 슬림 "기업 목적은 자선보다 이익 내는것"
포천에 따르면 슬림의 총재산은 올 들어서만 120억달러 늘어난 590억달러.빌 게이츠 MS 회장(580억달러)보다 10억달러 많은 규모다.

슬림이 갖고 있는 기업들의 주식 가치는 멕시코 증권시장 시가총액의 3분의 1에 달하고 보유기업들이 만들어낸 부가가치는 멕시코 국내총생산(GDP)의 5%에 이른다.

'멕시코의 록펠러'라고 불리는 슬림 회장의 경영철학과 성공 요인을 다섯 가지 키워드로 요약한다.


1.미스터 독점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보도한 슬림 관련 기사에서 멕시코 한 식당의 메뉴판에 적혀 있는 문구를 소개했다.

"이 식당은 멕시코에서 카를로스 슬림이 소유하지 않은 유일한 음식점입니다." 그만큼 슬림의 영향력이 크다는 얘기다.

실제로 통신 금융 유통 건설 방송 등 어지간한 산업에는 모두 슬림의 기업이 자리를 잡고 있다.

게다가 각 분야에서 모두 독과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무선통신 업체인 '아메리카모빌'의 시장점유율은 70%에 달하고 유선통신 회사인 '텔멕스'는 시장의 90%를 장악했다.

당연히 독점의 폐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서는 "저평가된 기업을 사들여 경영을 정상화하는 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며 슬림의 사업적 능력을 높게 평가한다.


2.위기가 곧 기회

슬림은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카를로스 슬림 "기업 목적은 자선보다 이익 내는것"
그의 부친인 줄리안 슬림은 고향인 레바논을 떠나 멕시코에 둥지를 튼 뒤 맨손으로 수백만달러의 부를 이뤘다.

결정적 계기는 멕시코 혁명이 일어난 1910년에 찾아왔다.

당시 농민 반란이 일어나면서 대부분의 부자들이 멕시코를 등졌지만 슬림의 부친은 오히려 싼 값에 멕시코시티 중심부의 부동산을 사들였다.

"우여곡절은 있겠지만 멕시코가 망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과감한 투자의 배경이었다.

예상은 적중,'슬림 가문'을 일군 토양이 됐다.

아들 슬림도 똑같은 과정을 겪었다.

1980년대 멕시코에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슬림은 공격적으로 기업을 사들였다.

'세구로스 데 멕시코'라는 보험회사를 시작으로 각 분야의 알짜 기업을 하나씩 손에 넣었다.

국영 통신 회사들의 민영화에도 참여,단번에 멕시코 최대 재벌로 부상했다.


3.절약 또 절약

슬림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철저한 경제 교육을 받았다.

단 몇 페소짜리 물건을 사더라도 지출 내역을 장부에 기록했다.

이 용돈기입장은 아직도 슬림 회장의 책장에 꽂혀 있다.

이 과정에서 절약 정신이 몸에 뱄다.

요트나 별장 등 과시용 재산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수십 년째 똑같은 집에 살고 있고,냉방도 잘 되지 않는 낡은 3층짜리 건물에서 업무를 처리한다.


4.철저한 기업가정신

카를로스 슬림 "기업 목적은 자선보다 이익 내는것"
슬림은 "기업의 최우선 목적은 자선이 아니라 이익 창출"이라는 원칙에 철저하다.

최근 들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자선사업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기본적인 생각에는 큰 변화가 없다.

단적인 예가 최근 열린 기자회견장에서의 발언.그는 멕시코시티의 건강연구재단에 기부금을 전달하는 자리에서 "사업가는 산타클로스가 아니다"며 "사업가는 기부 활동보다 기업을 튼튼하게 만드는 것이 사회에 공헌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5.실패도 성공을 위한 비용

슬림의 투자 리스트에는 실패한 기업도 적지 않다.

미국 3대 전자 소매체인 중 하나인 '콤프유에스에이(CompUSA)'의 지분 15%를 사들인 것이 대표적인 실폐 사례다.

델 컴퓨터 등이 저가 컴퓨터를 직접 소비자에게 공급하면서 수익성이 급격히 떨어졌다.

슬림은 최근 이 회사의 지분을 팔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슬림은 이 같은 실패도 성공을 위한 비용으로 간주한다.

슬림은 "사업을 하면서 실수가 없기를 바랄 수는 없다.

다만 그 실수의 피해를 얼마나 줄이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