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동안 굳게 잠겨 있던 '금녀(禁女)의 골프 성지(聖地)'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파73.6천638야드)에서 막을 올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네번째 메이저대회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세계랭킹 1위 로레나 오초아(멕시코)가 불꽃타를 휘두르며 메이저 무관의 한풀이에 나섰다.

오초아는 3일(한국시간) 열린 대회 1라운드에서 보기없이 버디만 6개를 골라내는 완벽한 플레이를 펼쳐 6언더파 67타를 쳐 리더보드 맨 윗줄에 자리 잡았다.

올해 3승을 포함해 통산 12승을 올리며 세계랭킹 1위를 달리고 있는 오초아는 이로써 '메이저 왕관없는 반쪽 1인자'라는 오명을 씻어낼 채비를 갖췄다.

따뜻한 햇볕이 내려 쬐는 가운데 악명 높은 바닷 바람이 숨을 죽인 현지 시간 오전 7시에 티오프한 것도 오초아에게는 행운이었다.

5번홀(파5) 버디로 포문을 연 오초아는 8번(파3), 9번(파4), 10번홀(파4)에서 줄 버디를 뽑아내며 선두로 올라섰고 15번홀(파4) 버디에 이어 남자 선수들에게는 '지옥으로 가는 길'로 불렸지만 파4홀에서 파5홀로 바뀐 17번홀(파5)에서 1타를 더 줄여 기분좋은 첫날을 마무리했다.

오초아는 "거의 바람이 불지 않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면서 "오늘은 정말 모든 샷이 다 잘됐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오초아는 코스 곳곳에 112개나 깔려 있는 항아리 벙커에 단 한번도 볼을 빠뜨리지 않았다.

33명이나 출전한 '코리언 시스터스' 가운데 미국 유학생 출신 박인비(19)가 오초아에 2타 뒤진 공동2위에 올라 '한류 돌풍'을 예고했다.

US여자오픈 첫날 69타를 치며 결국 공동4위라는 좋은 성적을 냈던 박인비는 9번홀부터 13번홀까지 4개홀 연속 버디를 쓸어담는 등 4언더파 69타를 때려 메이저대회에서 연속 상위 입상을 바라보게 됐다.

9번홀에서 15m 버디 퍼트, 10번홀에서 10m 버디 퍼트를 각각 성공시킨 박인비는 "퍼팅이 아주 잘됐다"면서 "2번홀 보기로 시작했지만 실망하지 않고 이븐파로 끝내자고 마음 먹은 게 오히려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올해 부진을 거듭하고 있는 이미나(25.KTF)가 2언더파 71타로 공동6위에 올랐고 이지영(22.하이마트), 이정연(28), 민나온(19), 김인경(19) 등이 공동10위(1언더파 72타)를 달려 6명의 태극 낭자가 '톱10'에 이름을 올렸다.

에비앙마스터스 출전을 고사한 채 이 대회 준비에 공을 들인 박세리(30.CJ)는 버디 4개와 보기 4개를 맞바꾸며 이븐파 73타(공동21위)에 그쳐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3번(파4), 4번홀(파4)에서 잇따라 1타씩을 잃으며 부담스럽게 경기를 풀어간 박세리는 버디를 잡아내면 금세 보기로 타수를 잃는 답답한 플레이를 이어갔으나 14번홀(파5)과 17번홀(파5)에서 1타씩을 줄여 오버파 스코어는 모면했다.

한국여자프로골프 대표 선수로 참가한 지은희(21.캘러웨이)는 이븐파 73타로 버텼지만 신지애(19.하이마트)는 3오버파 76타로 부진했다.

2005년 이 대회 우승자 장정(27.기업은행)도 3오버파 76타로 타이틀 탈환에 적신호를 켰고 김미현(30.KTF)은 6오버파 79타를 치는 바람에 컷오프 위기에 몰렸다.

논란의 주인공이 되어 버린 '천만달러의 소녀' 위성미(18.미국 이름 미셸 위)도 이븐파 73타를 쳐 스스로 '절반의 실패와 절반의 성공'이라고 평가한 1라운드를 마쳤다.

위성미는 4번(파4), 5번홀(파5)에서 연속 버디를 뽑아낸 데 이어 10번홀(파4)에서도 버디를 보태 그동안 부진을 날려 버리는 듯했다.

하지만 11번홀(파3) 보기에 이어 반드시 버디를 잡고 넘어가야 하는 14번홀(파5)에서 1타를 까먹은 뒤 16번홀(파4)도 보기로 홀아웃하면서 벌어놓았던 타수를 모두 잃고 말았다.

위성미는 "올해 들어 가장 플레이가 잘 된 날이었다"면서 "쉬운 퍼트를 몇차례 놓치기는 했지만 긴 터널에서 빠져나온 기분"이라고 말했다.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에서 뛰고 있는 루이제 프리베리(스웨덴)이 4언더파 69타를 때려 깜짝 2위에 올랐고 미야자토 아이(일본)와 레베카 허드슨(잉글랜드)이 3언더파 70타를 쳐 오초아에 4타 뒤진 공동3위를 달렸다.

2000년과 20005년 올드코스에서 열린 브리티시오픈을 제패했던 타이거 우즈(미국)에게 코스 공략 비법을 전수받았다는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은 1언더파 72타로 공동10위에 올라 무난한 첫날을 보냈다.

한편 선수들이 18홀을 도는데 6시간씩 걸리는 등 진행이 늦어지면서 6명의 선수가 1라운드 경기를 마치지 못해 2라운드에 앞서 잔여 경기를 치르게 됐다.

(서울연합뉴스) 권 훈 기자 kh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