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땅에 된 가래 뱉어가며 시큰거리는 관절을 주무르다,백태 낀 눈으로 하늘 바라보는 고궁(古宮)의 할아버지.

나무들도 쓰러지고 싶어 가지를 비트는 여름.땡볕에 온몸 익어버린 운현궁 먹기와 지붕.내장이 헐어 빈 껍질 남을 때까지 우는 매미.

모두 뒤척이다 지쳐 단내 나는 입으로 하늘 한 귀퉁이를 물어뜯고 있다.

훅훅 찌는,피할 수 없는,되게 말라버린,피곤한,부아가 치미는 오후.

마른 등짝 더위 먹은 삶에,하늘 열고,구름 뚫고,미치도록 시원하게 소나기라도 한바탕.

-신종호 '찢어진 풍경' 전문


날씨가 덥고 찌는 것 만으로는 이런 험한 말들이 나오기 어렵다.

삶 자체에 짜증나고 부아가 치밀 때라야 쏟아지는 말들이다.

분노의 원인이 뭔지는 모르지만 한계를 넘었다.

오죽하면 매미의 울음을 듣고 내장이 헐어 빈 껍질만 남는다고 신경질을 냈을까.

나무들도 녹음을 뽐내는 게 아니라 쓰러지고 싶어 가지를 비튼다고 했다.

생각만 해도 질리는 폭염의 오후.하늘 열고,미치도록 시원하게 소나기가 한바탕 내리기를 바라지만 희망일 뿐이다.

희망과 관계없이 세상은 냉혹하게 갈길을 간다.

피할 수 없는 것을 맞아들이는 수 밖에 없다.

삶의 어깃장도,더위도 마찬가지다.

눈앞에 와 있는 이 여름을 어떻게 맞아야 할까.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