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00년 전 이집트 룩소르에 있는 `왕가의 계곡'에서 발견된 미라의 신원이 여성 파라오인 하트셉수트로 확인됐다고 자히 하와스 이집트 고유물최고위원회 위원장이 27일 밝혔다.

고대 이집트 왕국 제18왕조의 5대 파라오(BC 1473∼1458)인 하트셉수트는 `파라오'라는 칭호를 갖고 있는 유일한 여성 군주이다.

파라오의 무덤 지대인 `왕가의 계곡'을 건설한 투트모세 1세의 딸인 하트셉수트는 이복 동생인 투트모세 2세의 왕비였다.

그녀는 투트모세 2세가 죽은 뒤 후궁의 소생으로 어린 나이에 파라오가 된 투트모세 3세의 섭정자로서 권력을 행사하면서 최고통치자인 파라오로 군림했다.

그녀는 남장에다 수염을 달고 이집트를 지배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재위 기간에 자신이 죽으면 묻힐 장례사원을 건설했다.

이집트에서 가장 큰 사원 중의 하나인 하트셉수트 장제전은 지금까지 위용을 뽐내고 있다.

투트모스 3세는 하트셉수트가 사망한 뒤 오랜 섭정에 대한 앙갚음으로 그녀의 기념물과 무덤을 파괴한 것으로 알려져 하트셉수트의 미라도 영원히 사라졌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다.

그녀의 것으로 확인된 미라는 어린이 크기의 다른 미라와 함께 영국인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에 의해 1903년 처음 발견됐지만 수십년 간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채 무덤에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카터는 1922년 황금마스크를 쓴 `소년왕'으로 널리 알려진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굴한 주인공이다.

방치됐던 미라가 하트셉수트의 미라일 가능성은 미국의 이집트학 전문가 엘리자베스 토머스가 몇해 전 처음으로 제기했다.

토머스는 이 미라의 왼손이 가슴에 얹어져 있는 점을 들어 미라의 신분이 왕족이고 정황상 하트셉수트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를 근거로 1년 전부터 이 미라의 신원을 연구해 온 하와스 위원장은 마침내 하트셉수트의 미라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는 이 한 개가 핵심 열쇠가 됐다.

연구팀은 하트셉수트 여왕의 명문이 새겨진 상자 안에서 발견된 부러진 이를 단서로 미라에 대한 단층촬영을 실시하고 3차원 영상 분석을 통해 미라와 하트셉수트 여왕 가계의 독특한 신체 특성을 비교분석하는 방법을 병용했다.

하와스 위원장은 단층촬영 결과 미라의 빠진 어금니 자리와 발견된 이가 일치했다며 이 미라가 하트셉수트임을 100%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하트셉수트 미라의 발견은 이집트 역사상 가장 중요한 발견의 하나"라며 "이 미라가 하트셉수트를 둘러싼 여러 의문점과 미궁에 싸인 그녀의 사인을 규명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라를 분석한 결과 하트셉수트는 뚱뚱했고, 당뇨병을 앓았던 것으로 추정된다며 50대에 간암을 앓아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하트셉수트 여왕의 미라 여부를 최종 확인하기 위해 2개월 전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의 지하에 마련된 DNA 분석실로 미라를 옮겨 정밀 조사를 진행 중이다.

연구팀은 미라의 엉덩이 뼈와 대퇴골에서 DNA를 채취해 이미 신원이 확인된 하트셉수트의 할머니 미라에서 채취한 DNA 표본과 비교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연구팀에 참여하고 있는 이집트의 분자유전학자인 예히아 자카리아 가드는 "초기 결과가 매우 고무적"이라며 DNA 분석 결과를 낙관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카이로 소재 아메리칸 대학의 살리마 이크람 교수 등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에 발표된 과학적 분석 결과도 미라의 신원을 확정 짓기에는 미흡할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한편 이집트 박물관 지하에 DNA 분석실을 설치하는 자금으로 500만달러를 지원한 디스커버리 채널은 하트셉수트의 미라를 확인해 온 과정을 프로그램으로 제작해 내달 중 방영할 예정이다.

(카이로 AP.AFP=연합뉴스) maroonj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