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술이나 한잔 하고 친해지면 되는거 아니야?"

몇 년 전 베이징에 진출한 한 중견 의류회사 A사장은 중국시장을 만만하게 보고 들어왔다가 낭패를 봤다.

친한 중국인 공장장에게 전권을 맡기고 투자했다 그와 사이가 틀어지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공장장은 중국인 직원들을 선동해 파업을 주도했고 A사장은 이들을 해고했다.

직원들은 A사장을 노동중재위원회에 제소했고 중재위는 이들의 손을 들어줬다.

중국법에 따르면 근로자들을 해고하기 한 달 전 그 사유를 통지해야 하는데 A사장은 이런 절차를 밟지 않았다.

결국 한꺼번에 많은 보상금을 지급해야 했던 A사장은 큰 손해를 보고 회사 문을 닫아야 했다.

이 같은 일을 당한 한국 기업인은 비단 A씨뿐만이 아니다.

KOTRA 베이징무역관 정성화 과장은 "대기업들과 달리 중소기업들은 중국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법률적인 검토 등을 소홀히 해 큰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며 "가장 기본적인 해고 사유 사전 통지 절차조차 챙기지 못하는 기업도 많다"고 말했다.

이들 중소기업인이 이런 법률적인 자문을 받는 데 인색한 이유는 무엇보다 중국사회가 아직도 '관시(關係)문화'를 지배적이라고 믿기 때문.인맥 위주로 돌아가는 사회라는 생각에 투자 전 법과 제도를 면밀히 따지기보다는 믿을 만한 사람과 관계를 맺는 데 주력한다.

하지만 현지 진출 한국 기업 관계자들은 중국이 더 이상 인맥에 의해 돌아가는 사회가 아니라고 말한다.

대상식품 중국총괄팀 박경렬 부장(36)은 "예전에는 매장 입점 때 구매담당자와의 인맥과 뒷거래가 중요했지만 이제는 그런 관행이 거의 사라지고 철저한 계약관계에 따라 거래가 이뤄진다"며 "경제 발전에 따라 법과 제도가 사회 운영의 기본이 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KOTRA 베이징 무역관에 따르면 베이징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총 3700여개.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수많은 기업들이 진출했고 더 이상 해외라고 얘기할 수 없을 만큼 중국시장은 국내 기업들의 주요 활동무대이다.

하지만 시장이 커졌다고 반드시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제2의 A사장이 되지 않기 위해 기업인들은 '인맥'보다 '법맥'구축에 더 힘써야 할 것 같다.

베이징=박민제 사회부 기자 pmj5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