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화도 연등선원 외국인 스님 >

서울에서 자동차로 달린지 한시간 반.강화도 산길 한켠에 마침내 나타난 '연등 국제선원→'표시판이 작고 겸손해 보인다.

선원에 들어서자 낮은 언덕 위 나무 정자에는 찻잔과 주전자가 먼저 손님 마중을 나와있다.

들꽃이 핀 절 마당으로 스님 셋이 합장하며 걸어왔다.파란 눈과 이국적인 얼굴.

일고(스위스), 혜행(러시아), 운풍(베트남) 스님은 각각 다른 나라에서 왔다. 먼 한국까지 어떻게 오게 됐는지가 궁금해 질문을 던졌다.

혜행 스님은 "마음의 열쇠를 찾아서 왔다"고 담담하게 대답했다.느린 말투였지만 한국어가 꽤 정확했다.


"모스크바의 한국불교센터에서 불교를 접하다가 4년 전 한국에서 행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진정한 불교를 배우려면 한국에 와야 한다는 생각이었지요. 함께 온 쌍둥이 형은 고된 수행 기간을 버티지 못했고 혼자 남았습니다."

혜행 스님에게서 새내기의 진지함이 묻어난다면 12년째 한국에서 수행하고 있는 일고 스님은 한결 여유가 있었다. "뭘 그렇게 많이 물어보냐"며 너털웃음부터 짓는데 한국말이 능숙했다.

일고 스님과는 10여년 전 연등국제선원이 서울에서 강화도로 터를 옮겼을 때부터 컨테이너 생활을 하며 인연을 맺어왔다고 주지인 원유 스님이 전했다. 세계 각국을 다니며 참선을 한 일고 스님은 티베트어 등 4개국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한다.

이들의 하루 일정은 한국인 스님과 다를 바가 없다. 새벽 3시30분에 일어나 예불을 시작한다. 외국인 스님을 위한 도량인 만큼 각국에서 온 스님들이 기약없이 머물다 떠나곤 한다.

지금은 주지스님을 포함해 4명의 단출한 식구들이 빨래며 식사 준비까지 책임져야 할 때가 많다. 기자가 방문한 날 운풍 스님이 점심 당번이었는데,된장국 끓이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외국인 스님은 수행만 하는 것은 아니다. 주지스님과 세 외국인 스님은 2년 전부터는 외국인 템플스테이와 어린이를 위한 영어 캠프를 시작했다. 절을 찾는 외국인에게 교리를 설명해 주기도 하고 캠프에 온 어린이들에게는 영어와 예불 방법을 가르친다. "캠프 때는 하루에 빨랫거리가 두 박스나 된다"고 설명하는 스님들의 표정은 고생스럽기보다는 흐뭇해 보였다.

홈페이지 관리 등 절의 잔일을 도맡다 보니 스님들의 컴퓨터 실력도 전문가 수준이다. 일고 스님은 얼마 전 인터넷 프로그래밍 언어 '자바' 자격증까지 땄다. 며칠 전 시험 합격 소식을 듣고 빵을 사와 조촐한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수행 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게 뭐냐고 묻자 세 스님 모두 입을 모아 '한국어'라고 대답했다. 한국인이 보기에도 어려운 경전을 읽고 큰스님들의 가르침을 받으려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그래도 출가 후 스님이 될 때까지 한국인보다 여섯 달 정도 더 걸렸다고 했다.

베트남에서 어릴 때부터 30여년을 수행하고 1년 전 한국에 온 운풍 스님은 아직 한국어가 능숙하지 못하다. 틈틈이 이어폰을 끼고 한국어 공부 테이프를 들으며 공부 중이다. 미소 띤 얼굴로 옆에 앉아있던 그는 말 대신 빨간 보리수 열매를 한 줌 따다 기자에게 건넸다. '마음은 허공과 같아서 소유한 바가 없다'는 구절을 손수 쓴 쪽지와 함께.

혜행 스님은 "처음 절에 들어왔을 땐 여러 명이 한 방을 같이 쓰는 것이 낯설었다"며 한국의 공동체 문화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하지만 가까이서 좋은 일 나쁜 일을 함께 하다 보니 한국인의 깊은 정을 알게 됐다고 했다.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 환경에 푹 빠졌다는 일고 스님은 "가끔 책을 사러 시내로 나가면 정신없이 앞만 보고 가는 한국인들이 눈에 띈다"며 "때론 주변을 둘러보며 마음을 편안히 먹으면 더 좋을 것 같다"고 전했다.

스님들에게 한국은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다. '화두'를 중시하고 스스로 해답을 찾아가는 한국불교의 방식이 마음에 든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정신적 전통에 관심 갖고 출가를 결심하는 외국인 행자가 늘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주지인 원유 스님은 "잠도 못 자며 교리를 익히고 무릎 관절이 상하도록 절하는 고생 속에서 그 중 절반이 고향으로 돌아간다"며 "마음 가짐이 대견하다"고 말했다. "힘들면 수행을 통해 마음을 비우면 된다"고 말하는 이 곳 스님들은 언젠가 한국 스님으로만 이뤄진 절에서 '100% 한국 불교'를 배우는 게 꿈이다.

스님들이 한국인에게 던지는 '화두'는 무엇일까. "작년에 조계종 외국인 스님들과 함께 금강산을 방문했는데 미국인 스님들은 입산을 거절당하더군요. 빨리 통일이 돼서 '적과 나'의 개념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러시아에서 북한 체제를 가까이 볼 기회가 있었다는 혜행 스님은 "통일이 멀지 않았다"며 "그 때가 되면 시베리아와 한국을 잇는 열차를 타고 러시아를 다녀오고 싶다"고 미소를 지었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