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지방도시에 점포를 냈던 A대형마트는 올 들어 좌불안석이다.

지역민들을 위한 복지기금을 매년 꼬박꼬박 내고 있지만,지난해 이 지역에 점포를 낸 다른 대형 마트들보다 액수가 적다는 이유로 지역 여론의 도마에 오르고 있어서다.

이 정도는 약과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이름도 모호한 지역 발전기금으로 매출액의 1%를 매년 내라고 공공연히 요구하는 실정이다.

전북 지역의 한 지자체는 폭 50m 길이의 개천 옆에 백화점이 들어서자 개천을 건너는 다리를 짓도록 압박,이를 관철시켰다.

본사에서 일괄 제작하는 광고 전단지도 지역업체에 발주하라고 압력을 가하는 지자체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제주도는 더 흥미롭다.

구(舊)제주 중앙사거리 일대 패션점 상인들이 B대형마트 제주 출점에 반대하는 플래카드를 도로변에 걸어놓고 점포 셔터를 4시간 동안 내리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B대형마트는 신시가지 한 복판인 노형동에 오는 8월 말 개점할 예정이어서 구제주 상권의 손님을 빼앗아갈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게 정설이다.

대형 마트의 주력 상품은 식품이지,의류나 잡화가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시쳇말로 대형 유통업체들은 지자체와 지역 국회의원들의 '밥'이다.

유통업체가 정당한 절차를 거쳐 제출한 건축심의를 지자체가 거부하고 시간을 질질 끌다가 재량권 남용으로 패소판결을 받은 사례도 수두룩하다.

행정소송이 진행된다고 해서 지자체가 아쉬울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한시바삐 점포 문을 열어야 하는 유통업체만 속을 끓일 뿐이다.

이 모든 것이 유권자들의 표를 먹고 사는 지자체장과 국회의원이 중소 상인들의 눈치를 보는 데서 생긴 병폐다.

현재 국회 상임위에는 대형 마트의 출점과 영업을 규제하는 법안 10여개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현행 등록제를 허가제로 바꾸어 출점을 규제하자는 법안이 있는가 하면 영업시간과 일수,취급품목을 제한하자는 법안까지 다양하다.

'누가 유통업체들의 발목을 더 세게 잡는지' 경쟁이 불붙은 듯한 분위기다.

이 와중에 소비자들의 이익은 완전히 실종되고 있다.

'소수의 외침'이 대세인 양 포장되면서 '말없는 다수'의 복지는 헌신짝처럼 버려지고 있다.

의원 입법에 따라 2002년 이후 자취를 감춘 유통업체 셔틀버스 사례가 대표적이다.

셔틀버스 운행이 금지된 후 중소형 점포 매출은 오히려 줄었다.

소비자들이 쇼핑횟수를 줄이는 대신 자가용을 몰고나와 한꺼번에 많이 사는 쪽을 택한 때문이다.

남편들은 주말 달콤한 휴식을 뒤로 하고 자가용 기사와 '카트맨' 노릇을 해야 했다.

중소 상인과 소비자들은 짜증이 났다.

대형 유통업체들도 셔틀버스를 처리하느라 홍역을 치렀다.

최근 쏟아지는 유통 관련 규제 법안들을 보면 셔틀버스 운행 금지의 전철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중소 상인들을 위한답시고 만든 법안들이지만 결과는 중소상인,대형유통업계,소비자 모두를 피곤하게 할 가능성이 크다.

법으로 강제,소비자들이 구멍가게로 발길을 돌리기를 바라는 것은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찾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강창동 유통전문기자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