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濟民 < 연세대 교수·경제학 >

원화가 '나홀로' 강세다.

최근 일본의 엔화와 중국의 위안화는 달러에 대해 큰 변동이 없는 반면 원화만 강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원화가 왜 나홀로 강세인가.

일본은 낮은 금리로 자본이 유출(流出)돼 엔화가 약세를 이어가고 있고,중국은 자본 이동을 통제하고 있으므로 정부가 환율을 결정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은 그 어느 쪽도 아니기 때문에 외자가 유입(流入)돼 환율을 낮추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외자 유입 규제다.

실제로 정책 당국은 은행의 단기 외자(外資) 조달에 대한 감독을 강화한다고 한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엔 캐리 트레이드'가 일반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 조치가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무이자 예치제 같은 좀 더 강력한 조치는 태국의 예에서 보듯이 증권시장 등에 심한 타격을 줄 수 있어서 채택하기 어렵다.

유입 규제보다 더 현실적인 조치는 유출 촉진이다.

정부는 작년에 해외부동산 투자 규제를 완화했고,올해 들어서는 해외펀드에 대해 비과세(非課稅)하고 금융회사의 국제화 전략을 도모하고 있다.

국산 헤지펀드를 설립해 해외 인수·합병(M&A) 등을 할 수 있도록 방안도 강구하고 있다.

문제는 자본 유출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본 유출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한국인이 세계적 차원에서 충분한 위험 관리를 하면서 수익성을 올릴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런 능력이 하루아침에 갖추어질 수는 없다.

그런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자본유출을 추진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은 바로 1997년 말의 외환위기 전(前) 한국의 경험이 가르쳐 주고 있다.

외환위기 전에도 은행 등 금융회사의 위험관리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자본 유출을 추진한 것이 위기로 이어졌던 것이다.

자본 유출의 추진은 아무래도 중장기 과제가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단기적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원화의 나홀로 강세를 손 놓고 보고 있어야만 하는가.

이대로 가면 올해 경상수지는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적자가 될지 모른다.

내수(內需)가 살아나고 있다고 하지만 미덥지 못한 상태에서 경상수지가 적자(赤字)로 반전된다면 경제성장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해외로부터 오는 어려움도 있다.

지금 세계는 금융시장이 폭발적 호황을 누리면서 높은 경제성장을 보이고 있지만,그 이면(裏面)에는 그 만큼 불안 요인이 도사리고 있다.

무엇보다 앞으로 수년 내에 미국의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가 낳고 있는 글로벌 불균형이 어떤 식으로 조정될지가 크나큰 문제다.

만에 하나 잘못되면 한국도 단기 자본이 급속히 빠져 나가는 또 다른 위기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그런 위기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먼저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경상수지가 적자로 반전되는 것을 막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감안한다면 원화의 나홀로 강세를 보고 있을 것이 아니라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하여 외환 보유액을 좀 더 쌓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겠는가.

외환 보유액이 이미 2500억달러라고 하더라도,자본의 유입은 자유화되어 있지만 유출을 실현시킬 힘은 없는 한국 같은 나라에서 이것이 과다하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거기에 세계경제의 불안에 대비해서 '실탄'을 더 확보해야 하는 사정이라면 외환 보유액을 확충할 필요는 더욱 커진다.

외환 보유액 확충은 수 년 내에 가치가 떨어질 가능성이 큰 달러보다는 엔화 같은 통화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물론 외환 보유액의 통화 구성은 민감한 정치적 사안(事案)이기는 하지만 지금부터 새로 쌓는 외환 보유액을 엔화로 하는 정도라면 미국도 양해해야 하리라 생각된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 자본이 해외에 진출할 수 있는 능력은 없는 상태에서 외자 유입을 완전 자유화하라고 요구하여 현재와 같은 상황을 만들어 놓은 것이 바로 미국과 그 영향력 하에 있는 국제통화기금(IMF)이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