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화장품 회사인 레브론(Revlon)은 지난해 4월 10여년 만에 가장 큰 규모의 신상품 발표회를 가졌다.

선보인 상품은 '바이탈 레이디언스(vital radiance)'.다름아닌 50세 이상의 뉴실버층을 겨냥한 화장품이었다.

대부분 화장품이 20,30대를 타깃으로 하지만 실제 대형 매장에서 화장품을 구입하는 사람의 70%가량은 45세 이상 베이비부머란 조사 결과에 착안한 것이었다.

레브론은 이 화장품을 개발하기 위해 2년을 투자했다.

베이비부머가 선호하는 화장 스타일을 파악한 뒤 이들이 겪는 어려움이 무엇인지 조사해 파운데이션에서 아이섀도까지 100가지 이상을 만들어냈다.

모델도 60대에 접어든 왕년의 인기 스타 수전 서랜든을 기용했다.

젊은 모델이 판치는 화장품 업계에선 파격이었다.

레브론의 베이비부머 공략이 성공을 거두자 로렐도 최근 50대 이상 시니어계층을 대상으로 한 화장품을 선보였다.

프록터 앤드 갬블(P&G)도 노인층을 겨냥한 화장품 개발에 착수했다.

젊은 사람들을 위한 화장품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사용해온 시니어로서는 그들만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베이비부머가 나이가 들어 눈이 침침해지자 이들을 겨냥해 기존 책의 크기를 키운 책이 나오고 있다.

문고판으로 유명한 펭귄그룹뿐 아니라 사이먼&슈스터사와 할리퀸,랜덤하우스,하퍼콜린스 등 대형 서점들도 책 크기를 키운 서적을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최근엔 하드커버의 책 크기도 커지고 있다.

물론 출판사들이 모든 책을 이렇게 크게 하는 건 아니다.

기존에 출판된 책 중 베스트셀러를 주로 크기를 키워 다시 출판하고 있다.

책 크기가 커진 만큼 값도 기존 책보다 비싸다.

그러나 갈수록 이런 책을 찾는 사람이 늘자 베스트셀러뿐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은 책들도 확대판을 내놓고 있다.

요즘은 출판 대상도 소설에서 공상이야기 요리책 위인전 등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지난해 랜덤하우스가 펴낸 활자와 크기를 키운 요리책 등은 베스트셀러 목록에 당당히 올라 새롭게 등장한 시장임을 확인했다.

이렇게 크기를 약간 크게 한 책만을 팔고 있는 서점의 마리온 해이그 사장은 "베이비부머들은 그들이 남보다 큰 책을 읽는다는 것이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읽기에 편한 활자체가 큰 책을 찾고 있다"며 "기존 책보다 1인치가량 키운 책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고 전했다.

유통업계의 변화도 두드러진다.

메이시스나 블루밍데일스 등 유명 백화점은 매장에 별도의 뉴실버 코너를 설치하고 있다.

뉴실버 코너는 백화점에 들어오자마자 가장 빠르고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에 배치된다.

백화점에선 드문 안락의자와 소파도 놓여있다.

전용 매장을 내는 업체도 늘고 있다.

갭(GAP)은 미국에서 가장 큰 의류업체다.

1969년 설립된 이후 주로 10대나 20대를 겨냥한 캐주얼한 옷을 만드는 업체로 유명하다.

이 업체가 최근 뉴욕 맨해튼에 '포스앤드타운(Forth&Towne)'이라는 새로운 체인점을 열었다.

타깃은 40세 이상의 베이비붐 세대 여성들.갭 특유의 캐주얼한 스포츠웨어를 포함,60대까지 부담없이 입을 수 있는 옷을 팔고 있다.

베이비부머는 IT에도 친숙한 첫 세대다.

각종 기능성 제품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그러다 보니 이들을 겨냥한 '시니어 테크놀로지'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400개 이상의 기술업체,고령서비스단체,대학 리서치센터,정부기관으로 구성돼 실버계층에 적합한 물건만을 연구 개발하는 실버테크놀로지 개발센터(CAST) 등이 가동되고 있을 정도다.

원시와 근시를 겸하는 안경이 개발되기도 했다.

애리조나대 연구진은 하나의 안경만으로 원·근시를 극복할 수 있는 안경을 내놨다.

바로 베이비부머를 겨냥한 상품이다.

50세 이상 싱글들의 중매 사이트인 매치닷컴(match.com)이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맞춤형 장례식이 느는 등 베이비부머들은 지금 미국사회의 구석구석을 개조하고 있다.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


< 베이비부머란 … >

전체 인구의 27%인 7800만여명에 달하며,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1946년생으로 1세대 격이다.

이들은 전후 경제부흥을 이끌면서 막강한 재력을 축적,풍부한 구매력을 무기로 소비시장은 물론 문화 패턴까지 바꾸고 있다.

비아그라 같은 성기능 상품과 주름살 제거제인 보톡스의 등장도 베이비부머를 겨냥,개발에 성공한 대표적 예다.

이들은 현재 매년 2조1000억달러를 소비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1946년생의 경우 앞으로 6년 뒤 평균 재산은 85만9000달러로,현재 67세 노인들의 평균 재산인 56만달러보다 50% 이상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전 세대보다 훨씬 부유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수치다.

또 엄청난 구매력을 가졌지만 은퇴 후에도 자아 실현을 위해 일자리를 원한다는 의미에서 뉴 실버(New Silver)라고 불린다.

'노인이 지배하는 사회'란 말을 들을 정도로 정치적 파워도 대단하다.

미국은퇴자협회(AARP)란 노인 이익단체는 회원이 3500만명,연간 예산만 8억달러에 달한다.

시골구석의 웬만한 여인숙도 AARP 회원에 대해 할인제를 실시하는 게 이를 말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