曺明鉉 < 고려대 교수·경영학 >

최근 한국 재벌그룹들의 지주회사체제로의 전환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일찌감치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한 LG를 필두로 SK,두산,CJ를 비롯한 여러 재벌그룹이 지주회사 체제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지금 불고 있는 지주회사 전환 열풍은 여권 일각과 공정거래위원회가 순환출자 금지를 주장하는 것과 맞물려 진행되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순환출자금지법안이 계류돼 있으며,최근 공정거래위원장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 삼성그룹을 직접 거명하며 지주회사체제로의 전환을 사실상 요구했다. 마치 정부와 여권이 한국 재벌의 소유지배구조를 지주회사체제로 몰고 가는 듯하며 외환위기 이후 재벌에 대한 정부주도의 두 번째 대규모 소유지배구조 개편이 시작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재벌의 황제식 경영을 경제위기의 주범(主犯)으로 간주하고 이의 개선을 위해 재벌들의 지배구조 개선을 추구했다.

그 결과 사외이사제도,실질적 이사 등의 굵직한 제도들이 도입,시행됐으며 특히 사외이사제의 도입은 소위 오너의 전횡에 대한 감독이라는 이사회의 역할 재정립을 위한 핵심 제도로서 간주됐다.

하지만 현대차 사태 등으로 인해 정부와 여권은 자신들의 지배구조개선 드라이브에도 불구하고 재벌의 지배구조와 경영행태가 크게 변화되지 않았다고 느끼는 듯하다.

특별히 기대를 걸었던 사외이사제도 또한 제대로 정착되지 못해 이사회가 강력한 내부규율 메커니즘으로 작동되지 않고 겉돌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따라서 정부는 이번에는 이사회제도 개선 등과 같은 재벌그룹의 개별회사 지배구조가 아닌 재벌그룹 전체의 출자소유구조 개편에 초점을 맞추고 재벌체제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소위 '오너'가 2∼3%의 지분을 가지고 순환출자를 통해 그룹 전체의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으며 또 경영권을 세습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이러한 행태를 고치겠다는 작심(作心) 아래 내놓은 제도가 지주회사체제인 것으로 보인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주회사제도의 장점으로 경제력 집중 억제,대주주 사익(私益)추구 방지,동반부실화 방지,순환출자 해소,경영권 방어 등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가장 중요한 의도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번 기회에 순환출자제도에 의존해 지탱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재벌체제를 완전히 바꾸어보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지주회사제도가 재벌체제의 소유지배구조를 개선시켜주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데 있다.

지주회사제 도입은 분명 투명성을 제고할 수 있다.

하지만 지주회사제 도입의 가장 큰 문제는 지주회사체제 하에선 M&A(기업인수합병) 시장의 규율이 작동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M&A가 가장 효과적인 지배구조 개선 메커니즘이란 사실에 비춰볼 때 지주회사 전환은 재벌의 지배구조를 오히려 더욱 악화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지주회사제도의 또 다른 문제점은 출자를 통한 투자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출자총액제한제도와 유사한 문제로서 향후 상당한 논란거리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가 내세우고 있는 지주회사제도의 장점들 또한 설득력이 약하다.

1987년 경제력 집중방지의 명분으로 금지시킨 지주회사제도를 이번에는 경제력 집중 억제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주주의 사익추구 방지나 동반 부실화 방지라는 명분도 지주회사제도와는 별반 상관이 없는 것들이다.

경영권 방어도 M&A 시장을 무력화시키는 지주회사 제도보다는 시장친화적인 경영권 방어기제를 만들어주는 것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

설사 한국의 모든 재벌그룹이 지주회사로 전환해 모두 순수지주회사의 모습이 된다면 이 또한 얼마나 기이한 상황인가?

정부는 장점이 검증되지 않은 제도를 획일적으로 강제할 것이 아니라 다원적(多元的) 소유지배구조 형태를 허용함으로써 이러한 다른 소유지배구조 간의 경쟁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우월한 형태로 진화할 수 있게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한 정책방향일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