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榮奉 < 중앙대 교수·경제학 >

1967년 미국의 내셔널리그(NL)는 당시 10개 팀을 12개로 늘릴 것을 발표하고 프랜차이즈 후보를 모집했다.

콜로라도 덴버시가 곧 NL팀 유치문제를 놓고 양편으로 갈렸다.

지지자들은 "우리 아이들에게 메이저리그 팀을 주자"며 유치캠페인을 벌였고 반대편은 거대한 비용부담을 문제 삼았다.

다른 도시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려면,우리의 동계올림픽 유치처럼 리그심사단을 매혹시킬 관객유치 대책과 거대한 최신형 구장(球場) 건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에 덴버시장은 메트로폴리탄 6개 군(county)의 모든 판매세를 1년간 1%포인트 올려 구장건설 재원을 마련하자는 제안을 주민투표에 부쳤다.

그러나 시민의 60%가 반대해 NL 프랜차이즈는 샌디에이고와 몬트리올로 넘어가고 말았다.

1990년 NL은 다시 2개 팀을 늘리기로 결정했다.

얼마나 기다리던 기회였던가.

이번에는 시민이 압도적으로 찬성해 2억여달러를 들인 새 구장이 시(市)부지에 건설됐다.

시민들은 열광했고 구장은 믿을 수 없는 관중동원 기록을 세우기 시작했다.

시민이 스스로 투표하고 세금 내 탄생한 구장과 홈팀을 보기 위해 이후 3년간 주말이건 주중이건 5만여 관중석이 완전히 매진된 것이다.

다른 구장이 연 200만명 유치에 애를 먹을 때 로키스(Rockies) 구장에는 450만여 관중이 들어찼다.

필자가 이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이유가 있다.

첫째, 민주주의국가에서는 국민 전체가 부담하고 관심 가지는 문제는 가능한 한 국민의사를 직접 물어봄이 마땅함을 말하고자 함이다.

둘째, 좋은 사업일수록 국민 스스로 동의해야 그 잠재적 효과가 극대화됨을 말하자는 것이다.

이명박 후보가 제시한 대운하(大運河) 사업이 지금 대권 주자들에게 진흙탕 싸움판을 만들어주고 있다.

지난 한나라당 대선후보 정책토론회는 마치 대운하 청문회장 같아서,수많은 중차대한 국가적 이슈에 대한 논의는 실종되다시피 했다.

운하가 여야 정치집단의 집중포화를 받는 것은 이것이 선두 후보를 비양하고 상처낼 아주 좋은 물건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네거티브가 목적이므로 진지한 토론,분석과 성실한 답변이 있을 수 없다.

비방과 선동이 난무하므로 이 후보가 공들이는 운하는 어이없게도 그가 제안한 탓에 국민에게 아주 몹쓸 물건으로 매일 각인되고 있는 것이다.

이 후보는 지금 대통령이 될 확률이 가장 높으므로 한반도 운하도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

이 사업에는 그가 주장하는 것처럼 경제,환경,자원,통합 등의 이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신뢰 기반이 상처난 채 추진된다면 긍정적 효과를 얻기보다 과거 새만금,부안사태,수도 이전(移轉)처럼 끝없는 갈등을 생산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좋은 사업으로 확신한다면 대통령이 된 뒤 국민투표에 부쳐 그 장단점을 하나하나 검증받아 국민의 지지를 얻은 뒤 해도 늦지 않다.

그래야만 국민에게 사랑받는 운하가 될 것이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찍은 국민 대부분은 이회창 후보의 이른바 부도덕성이나 기성세대가 싫어서 그를 찍었지 수도 이전 공약 때문에 찍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 뒤 어떻게 국토가 난도질 당하고 공공기관이 강제 이전되고 있는가.

마찬가지로 오늘날 이명박 후보의 지지자 대부분은 운하가 아니라 다른 장점 때문에 그를 찍을 것이다.

오히려 운하는 매일매일 이 후보에게는 씹지도 뱉지도 못할 계륵(鷄肋)이 되고,박근혜 후보에게도 '네거티브 생산하는 지도자'의 이미지만 심어주고 있다.

우리는 새 대통령이 나올 때마다 새만금,수도 이전 등 공약을 남발해서 국고(國庫)를 낭비하고 국민 분열을 초래하는 전통을 가진다.

이제는 국민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다소 분명치 않은 공약이라든가,대통령이 임의로 국가 자원을 소모하는 관례를 버릴 때가 됐다.

이번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는 운하 사업을 용기 있게 버리고,다른 장점으로만 국민의 심판을 받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