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식사가 도열해 있는 화사한 편의점

그녀는 평일 오전에 걸터앉아

하루 동안 견뎌야 할 중력을 가늠해본다

한 컵의 뜨거움,

수증기를 만들어 그녀의 얼굴을 가린다

컵라면을 먹다 말고 그녀는

국물 위에 둥둥 떠 있는 채소를 바라본다

이제는 말라,제대로 썩는 법조차 잃어버린 채소

그녀는 우걱우걱

즐거운 식사를 하고 있는 중이다

-조동범 '즐거운 식사' 부분



컵라면 국물 위에 말라버린 채소가 둥둥 떠다닌다.

채소라기보다는 미라처럼 제대로 썩는 법조차 잃어버린 '물체'들이다.

섬뜩하다.

언제부턴가 막무가내로 우리 생활을 비집고 들어온 인스턴트 문화.조리해 먹는 과정에서 느끼는 다채로운 삶의 질감을 '편리함'이라는 명제 아래 간단하게 삼켜버렸다.

정교한 실험을 통해 얻어진 기묘한 맛과 적당한 열량으로 무장한 '물체'들은 융단폭격하듯 우리 입맛을 유린한다.

컵라면에 물을 붓고 기다리는 3분 동안 삶의 여운은 간단하게 증발해 버린다.

화사한 편의점들이 도처에서,밤낮 없이 우리의 방부된 삶을 감시하고 있다.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