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핵은 인류의 기원과 함께 발생한 질병으로 꼽힌다.

기원전 7000년께 석기시대 인체화석에서도 발견될 정도여서 그 끈질긴 결핵의 역사를 짐작할 만하다.

정체를 알 수 없어 '모든 질병의 왕'으로 불린 결핵균이 발견된 것은 1882년이었고,치료약인 스트렙토마이신이 개발된 것은 1944년이었으니,그토록 오랜 기간에 걸쳐 결핵은 곧 재앙이었다.

예술 철학 문학 등 분야에서 천재로 알려진 쇼팽,파가니니,데카르트,칸트,스피노자,실러,도스토예프스키,발자크 등도 결핵으로 사망했다.

우리나라 천재시인 이상(李箱)도 결국 이 병으로 죽었다.

결핵을 '천재의 전유물'이라 말하는 까닭을 알 만하다.

결핵환자는 명화에도 등장한다.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명작인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에 나오는 비너스의 모델은 왼쪽 폐가 망가진 환자라는 주장이다.

결핵환자들은 대부분 왼쪽 폐가 먼저 망가지기 때문에 어깨가 처지면서 왼쪽 가슴이 오그라든다는 것이다.

초점없는 눈망울에 창백한 얼굴,뺨의 홍조도 그 근거로 든다.

'요즘 세상에 무슨 결핵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결핵이 다시 기승을 부려 비상이 걸렸다.

기존의 약으로 치료할 수 없는 신종 '슈퍼 결핵'이 유럽에서 급속히 퍼지고 있어서다.

며칠 전에는 유럽을 여행하고 귀국한 한 미국인이 이 결핵에 감염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미국의 매스컴들이 야단이 났다.

슈퍼 결핵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청소년들 사이에서도 결핵이 번지고 있다고 한다.

입시지옥과 무리한 다이어트로 체력이 저하되면서 면역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PC방이나 독서실 등 환기가 잘 되지 않는 좁은 방을 자주 이용하는 것도 원인으로 든다.

인류역사상 가장 많은 생명을 위협한 결핵은 아직도 지구상에서 200만명이나 되는 생명을 해마다 앗아가고 있다.

국내에서도 연간 3000명이 사망하고 있다고 한다.

결핵은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못 먹어서 생긴 '후진국 병'으로 알려진 결핵이 풍요한 사회를 비웃는 것 같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