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총액이 200억원 정도인 코스닥 소형사의 L사장은 며칠 전 난데없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얹어 2배 정도 비싼 값에 지분을 사줄테니 경영권을 넘길 생각이 없느냐"는 내용이었다.

L 사장은 "지분을 넘기기 싫으면 자기들을 대상으로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해달라는 얘기까지 들었다"며 "요즘 코스닥 기업을 인수합병(M&A)하려는 자금이 넘쳐난다는 말을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29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최근 들어 코스닥 상장사를 타깃으로 한 M&A 시도가 봇물처럼 터지고 있다. 이송훈 브릿지증권 M&A팀장은 "자금을 쏠 준비가 돼있으니 괜찮은 코스닥 기업을 소개해 달라는 전화가 하루에도 20통이 넘어설 정도"라며 "이들 중 상당수가 부동산으로 돈을 번 개인 큰손들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적대적 M&A 시도가 잇따르자 코스닥 기업들은 초다수결의제를 도입하는 등 경영권 방어장치 마련에 적극 나서고 있다.

◆코스닥 M&A 봇물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들어서만 코스닥 시장에서 경영권 양수도 계약이 9건에 달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최대 200%까지 경영권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될 정도다. 소형사인 로이트의 경우 지난 22일 최대주주 지분 16.14%를 140억원에 매각했다. 지분을 인수한 기업은 비상장사인 유비컴으로 당시 시가보다 3배 정도 높은 가격에 지분을 사갔다. 경영권 프리미엄으로만 95억원을 더 준 셈이다.

소형사인 세지도 최근 최대주주 지분 9.19%를 디지탈인사이드와 아이씨코퍼레이션에 주당 1721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전날 주가 대비 2배 이상 비싼 가격으로 50억원의 웃돈을 얹어 받은 것이다. 이 밖에 에프와이디와 실미디어 영실업 선양디엔티 등도 현 주가보다 많게는 3배 가까이 높은 가격에 경영권을 매각했다.

업계 관계자는 "시총이 100억~200억원대인 소형사라 하더라도 경영권 프리미엄은 최소 80억원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돌 정도"라며 "일부에선 거품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적대적 M&A 방어조항 도입 급증

코스닥 상장사들의 경영권을 노리는 자금이 넘쳐나자 기업들도 M&A 방어책 마련에 서둘러 나서고 있다. 코스닥상장법인협의회에 따르면 올해 주주총회를 마친 12월 결산 코스닥상장법인 927개사 가운데 적대적 M&A 방어수단인 '초다수결의제'를 도입한 회사는 모두 112개사로 전체의 12.08%에 달했다. 이는 전년도 66개사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초다수결의제란 M&A 등 안건 의결시 주주총회에서의 가결 요건을 특별결의 요건보다 더욱 까다롭게 하는 것으로 적대적 M&A를 막는 대표적인 제도다.

또 적대적 M&A로 인해 퇴임하는 이사에게 거액의 퇴직금과 보수지급을 명문화해 기업의 인수비용을 높이는 '황금낙하산제'를 정관에 명문화한 회사도 지난해 43개사에서 올해 79개사로 크게 증가했다.

이사 수의 상한선을 두는 회사는 지난해 557개사에서 올해 603개사로 늘었으며,집중투표제를 배제해 대주주의 의결권 행사를 제한한 회사도 지난해 784개사에서 올해 829개사로 증가했다.

정종태/김형호 기자 jtchung@hankyung.com